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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행동주의는 있다 [thebell note]

허인혜 기자공개 2022-05-09 07:59:58

이 기사는 2022년 05월 04일 07:5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말이 있다. '따뜻한 음료에 얼음' 또는 '찬 음료를 따뜻하게'처럼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최근 이런 수식어가 떠오른 투자 전략이 있다. 바로 우호적 행동주의다.

그도 그럴것이 국내에서 행동주의를 가장 널리 알린 사건은 KCGI의 한진칼 투자다. KCGI는 한진칼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경영권 분쟁에 직접 뛰어드는 한편 지배구조 개선 등의 주주제안을 펼쳤다. 국내에서 행동주의의 이미지는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주주 행동으로 굳어졌다.

그래서인지 주주 활동을 펼치는 자산운용사의 기사를 쓰면 수식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요지는 '행동주의'라는 말을 빼달라는 것이다. 주주 행동을 하고 있는데 행동주의라는 말을 빼달라니, 어떤 의미인가 물으면 '우리는 행동주의가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정체를 물으면 혹자는 우호적 행동주의라고 했고 혹자는 적극적 주주행동이라고 했다.

우호적 행동주의나 적극적 주주행동이라는 말은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들린다. 행동주의면 행동주의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행동주의가 아닌 주주활동은 무엇이란 말인가.

선진 금융시장의 행동주의 계보를 들여다보니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주주 활동이 활발했던 글로벌 시장에서는 행동주의의 개념이 보다 포괄적이다. 최근 행동주의 행보로 주목을 받은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가벼운 주주행동까지 포함하는 개념은 인게이지먼트에,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관철의 행동주의는 액티비즘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상생의 행동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라이프자산운용이 SK㈜에 보낸 주주서한이 좋은 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SK㈜에 자사주 소각과 리스크관리위원회 설치를 권유하는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자사주 소각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액티비즘에 가까워보이지만 SK㈜가 주주총회를 통해 자사주 소각 의지를 드러낸 뒤 보낸 서신으로 지지에 목적을 뒀다. 트러스톤자산운용과 VIP자산운용도 오랜 기간 기업과 협업하는 형태의 행동주의를 취해왔다.

주주 제안을 관철하는 태도의 행동주의가 나쁘다는 지적이 아니다. 적극적 행동주의 카드를 꺼내드는 자산운용사도 명분없이 경영 노선을 변경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여기에 기업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이는 행동주의도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다. 한국형 행동주의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졌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행동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재채기를 했던 기업들도 알레르기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주춧돌을 세웠던 한국형 행동주의는 이제 갈래길을 만들 만큼 성장했다. 투자 전략이 발전하면서 기업들의 면역력도 강해져야 할 시기다. 투자자와 기업의 인식이 달라진다면 수식어에서 행동주의를 빼달라는 자산운용사들의 요구도 잦아들지 않을까. 액티비즘은 악당이 아니고, 따뜻한 행동주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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