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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 '보수적 투자'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 [첨단전략산업 리포트]반도체·바이오에 밀린 투자 우선순위, 압도적 기술 차별화 가능한 시점 '기조 전환'

김혜란 기자공개 2022-06-23 12:44:49

[편집자주]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는 한국을 먹여 살리는 3대 국가대표 산업이다. 정부도 중요성을 인식해 '국가 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육성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비메모리를 키워야 하는 반도체, 중국의 추격을 받는 디스플레이, 개화하는 시장에서 주도권 선점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배터리 업계, 모두 현실은 녹록지 않다. 더 빠르게 치고 나가지 못하면 세계 무대에서 밀릴 수 있다. 대기업을 필두로 첨단전략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소재·부품·장비업체들이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 진단하고, 미래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다각도로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6월 21일 08:11 thebell 유료서비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유럽 출장 동선은 곧 삼성이 중요하게 여기는 미래먹거리 사업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반도체와 바이오, 인공지능(AI), 전기자동차 배터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전기차 배터리(삼성SDI)는 삼성이 지금까지 유독 투자에 신중한 기조를 보여왔던 사업 분야다. 삼성은 지난달 발표한 '450조원 투자 계획'에서도 반도체와 바이오, AI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고 강조한 반면, 배터리 분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아예 빠져 있었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이번 유럽 출장을 기점으로 삼성SDI가 공격적 투자 기조로 전환할 거란 전망이 나오지만, 이는 지금까지 삼성 그룹을 지탱해온 경영·재무전략의 색깔을 확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

삼성SDI가 수익성 위주의 보수적 재무전략을 유지해온 배경은 무엇 때문일까. 이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삼성SDI의 향후 투자 기조가 어디로 향할지를 제대로 가늠해볼 수 있다.

◇수주 여부, 철저히 '손익 목표'로 결정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중 상대적으로 투자 기조가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사실 삼성SDI도 2018년 전기차 배터리 투자를 본격화한 이후 매해 조 단위 투자를 집행해왔다. 2018년부터 5년간 평균 2조원(한국기업평가 기준) 수준의 캐펙스(CAPEX, 설비투자액)를 투입했는데, 대부분 유럽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 증설에 쓰였다. 올해부터는 미국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와의 합작 공장 설립에 대규모 캐펙스를 투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3조원 안팎의 캐펙스를 집행하는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에는 못 미치는 규모다. SK온의 경우 지난해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하면서 연간 캐펙스를 따로 추산하기가 어려우나 SK이노베이션의 작년 한 해 캐펙스(약 3조3000억원) 중 상당 부분이 전기차 배터리 부문 투자에 쓰였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작년 전체 사업부 투자 규모는 약 3조5000억원이다.

또 LG와 SK가 2025년까지 각각 520기가와트시(Gwh), 220GWh(2030년까지 500GWh) 규모의 캐파(CAPA, 생산능력)를 갖춘다는 목표로 투자를 진행 중인 반면, 삼성이 지금까지 시장에 확정해 발표한 건 유럽과 미국 생산거점 모두 합쳐 70Gwh에 불과하다.

삼성이 배터리 사업부문에 대해 보수적 투자 전략을 유지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SDI 전 고위임원 출신 한 인사는 "(내부에서 정한) 손익 목표에 해당하지 않는 수주에 대해선 내부에서 승인해주지 않는다"며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투자 집행이 보수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거래선을 최대한 확보해 초기 시장을 선점하는 데 주력하기보단 수익성 허들을 정해놓고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 수주는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SDI는 이를 '수익성 위주의 질적 성장'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는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정해놓은 투자 우선순위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삼성 그룹 내에서 배터리는 반도체와 바이오에 비해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바이오(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영업이익률이 최대 30%대, 반도체의 경우 50%까지 나오기도 하는 반면, 삼성SDI의 타깃 마진은 10% 정도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핫'하다고는 하나, 그룹 내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마진이 적은 사업"이라며 "그러니 삼성전자가 (삼성SDI를) 지원하지 않고 자생력 강화를 주문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SDI 배터리(사진=삼성SDI )

◇기술적 차별성만 있으면 한방에 뒤집는다…삼성의 자신감

삼성SDI가 경쟁사에 비해 투자 의사결정이 다소 뒤처지는 것은 사실 '기술적 차별성'에 대한 자신감이 기저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부회장이 최근 유럽 출장에서 귀국한 뒤 "저희가 할 일은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고 강조했듯 삼성 전자계열사를 관통하는 경영 기조는 한마디로 기술적 차별화다.

삼성SDI가 업계 최초로 배터리 브랜드 프라이맥스(PRiMX)를 선보이고 하이엔드 전략을 내세우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삼성SDI는 고부가가치 배터리 제품 젠(Gen) 시리즈 판매 비중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 현재 주류인 리튬이온배터리를 뛰어넘는 차세대 기술 전고체 배터리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계속 시장에 내놓는 것도 기술적 우위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전고체 전지는 내부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해 기존 리튬이온배터리보다 폭발 위험성이 상당히 낮다고 알려져 있다.

삼성SDI의 경우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현금성자산만 10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라는 뒷배경이 있다. 삼성SDI가 경쟁사들을 압도하는 기술력만 유지한다면, 시장 상황을 지켜보다 추후 적절한 때에 언제든지 시장의 판을 흔들 정도의 대규모 투자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게 삼성의 판단이다.
삼성SDI 기흥 사업장

다만 이에 대해선 내부에서도 시각이 엇갈린다. 앞선 인사는 "삼성 고위 경영진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은, 추후 투자 결정만 하면 삼성의 기술로 깔아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 리튬이온배터리 시장에서) 거래선을 안 늘리면 고객으로부터 오는 니즈나 챌린지를 통해 기술 완성도가 높아지는 부분을 놓치게 된다. 그룹을 이끌어가는 경영진과는 달리 현장 실무진들은 이런 점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은 보조금으로 지탱하는 시장,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

전기차 대중화 시기에 대한 불확실성도 삼성SDI가 투자에 신중론을 펴온 또 다른 배경으로 거론된다. 현재 전기차 시장은 정부 보조금이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가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수록 전 세계적으로 정부 보조금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보조금을 삭감하거나 폐지해 전기차 가격이 오르면 일정 기간 수요 둔화가 이어질 수 있다. 시장 불확실성이 있는 만큼 아직은 적극적으로 진검승부를 할 때가 아니라는 판단도 내부에선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보조금 정책이 완전히 폐지되면 비즈니스의 속도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삼성은 전기차 배터리 분야만큼은 아직은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아니라고 판단해왔다"며 "내연기관차와 견줄 만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시점에 가까워지면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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