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8월 09일 08: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만난 고려아연 관계자들로부터 재무상태에 얽힌 뜻밖의 걱정을 들었다. 흑자 전환 시기가 지연된 기업들이 힘들다는 얘기는 종종 들었지만 탄탄한 재무구조로 유명한 이 회사의 불안감은 의외였다.이야기를 들어보니 직원들의 고민은 주로 '빚'에 있었다. 갑작스레 늘어난 차입금이 부담스럽다든지, 돈 들어갈 곳이 많아 현금이 더 줄어들까 불안하다는 식의 얘기였다.
이런 기류가 흐르는 것은 미래 먹거리 마련을 위한 지출 때문이다. 국내 최대 비철금속 기업인 고려아연은 최근 2차전지 소재, 수소, 자원순환 사업으로 포트폴리오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속도감 있는 진출을 위해 지분투자나 인수합병(M&A)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1조원 넘는 금액을 투입했는데 이는 지난 10년간의 투자금 지출을 다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물론 재무구조가 우량해 아직까지는 기업의 건전성을 우려할 여지는 없다. 올 1분기 연결 기준 부채비율은 33.4%로 상당히 양호하다. 총차입금은 6926억원인데, 현금성 자산이 1조6000억원이라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이 같은 상황이 유지돼 왔던 게 꼭 좋은 일이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량한 재무구조는 고려아연이 미래를 대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았음을 드러낸 기록이었을지도 모른다.
생석회를 납품하던 포스코케미칼은 2018년 말 기준 부채비율이 25%에 불과했지만 2차전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투자를 급격히 늘리다 보니 2020년 말에는 부채비율이 100%를 넘기도 했다. LG화학 역시 마찬가지로 자금 확보를 위해 물적분할을 진행하는 등 유동화에 집중한 바 있다.
과감한 투자로 '톱 티어(Top Tier)'가 된 업체들도 있다. 포스코의 수소, SKC의 동박(전지박), LS니꼬동제련의 도시광산(자원순환) 등은 이미 상당한 기술 진보를 이뤘고 매출까지 올리는 상황이다.
경쟁사와 비교하면 고려아연의 미래 먹거리 발굴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후발주자인 셈이다. 본업이 안정적이다 보니 자연스레 투자에 보수적인 사내 문화가 주류가 됐기 때문이다. 불어난 차입금에 어색함을 느끼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연장선에서 최근 일부 직원들은 대기업과 추진 중인 신사업을 보면서도 빚 걱정만 했다는 후문이다.
고려아연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곳간을 지키며 현재에 머무를 것이냐, 돈을 더 쓰고 가능성을 만드는 일에 더 접근할 것이냐의 딜레마다. 일단 회사는 지갑을 열고 꽤나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지금 느껴지는 불안감을 발판 삼아 더 안정적인 궤도를 만들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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