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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팹리스, 미래를 묻다]"팹리스가 커야 파운드리·OSAT 생태계도 성장"①팹리스협회 초대회장 이서규 픽셀플러스 대표이사 인터뷰

김혜란 기자공개 2022-10-04 14:21:14

[편집자주]

2000년대 초반, 한국 자본시장에 팹리스 투자 붐이 일었다. 200여 곳의 유망주들이 스타팹리스를 꿈꿨다. 그러나 해외 진출에 실패하며 줄줄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팹리스 불모지'로 남았다. 20년이 흐른 지금, 다시 팹리스에 돈이 몰리고 있다. 과거엔 승부처가 모바일 칩에 몰려 있었다면 지금은 서버 등에 들어가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치열하다. '제2의 엔비디아', '제2의 퀄컴'을 꿈꾸며 도전에 나선 국내 팹리스들을 차례로 만나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9월 30일 16:3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는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계에 의미 있는 해다. 구심점이 될 '한국팹리스산업협회'가 지난달 출범하며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팹리스 업계를 대변할 단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존에도 자체 모임인 '한국팹리스연합'이 있었지만, 협회는 산업통상자원부에 등록된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물론 '한국반도체산업협회'도 있었으나 메모리·비메모리 분야, 팹리스와 파운드리(위탁생산), 후공정(OSAT), 소재·부품·장비 업계를 모두 아우르다보니 팹리스에 대한 지원이 후순위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초부터 팹리스 육성이 국가적 과제로 지적됐으나 업계를 대변할 협회는 이제야 만들어졌다. 팹리스산업협회 초대 회장은 이서규 픽셀플러스 대표이사(사진)가 맡았다. 이서규 회장은 2000년 이미지센서 전문 팹리스 픽셀플러스를 창업해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어온 '1세대'다. 누구보다 'K-팹리스'의 부흥과 쇠퇴, 좌절과 도전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이 회장은 "국내 팹리스가 대체로 영세하다 보니 자금과 상근 인원 확보 등이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며 "지금은 (국내 팹리스의 83% 이상인) 108여곳이 가입해 업계 전체를 아우르는 협회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팹리스 생태계 강화에 필요한 실질적인 대안들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게 정부·국회와의 소통에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2일 이 회장을 직접 만나 업계 이야기를 들어봤다.

◇팹리스가 전체 반도체 생태계, 세트 산업 키운다

이 회장은 "팹리스가 잘 돼야 파운드리와 OSAT도 더 잘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세계 1위 파운드리 대만 TSMC가 성장한 것도 팹리스와 파운드리가 시제품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제작 단계부터 긴밀하게 협업하며 팹(Fab·공장)을 돌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팹리스가 선제적으로 개발한 제품을 자국 파운드리에서 생산하니 공정 기술이 발전하고, 패키지 수요가 늘어나 OSAT도 성장한다.
한국팹리스산업협회 초대 회장을 맡은 이서규 픽셀플러스 대표.

반대로 파운드리의 첨단 공정이 안정화되면 팹리스도 그 수혜를 누릴 수 있다. 14나노미터㎚(㎚, ㎚=10억 분의 1m) 이하 첨단 공정 생산이 가능한 파운드리는 전 세계에서 삼성전자와 TSMC뿐이다. 팹리스가 아무리 고성능 칩을 설계해도 이를 최첨단 공정으로 생산해주는 곳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삼성전자는 올해 세계 최초로 3나노 제품 양산에도 성공했다. 삼성 파운드리와 팹리스가 상생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난 셈이다.

이 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이 초기인 만큼, 팹리스들이 제품화만한다면 글로벌 수요는 엄청 많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 기술을 가진 삼성 파운드리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기업인 삼성전자도 손해보고 라인을 내줄 순 없다"며 "정부가 주도해 상생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팹리스의 성장은 자국 내 거의 모든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팹리스는 조선, 가전 등 세트(완성품) 업계는 물론 방위산업에 필요한 핵심적인 반도체를 만든다. 반도체가 고도로 진화해야 세트 산업이 발전한다.

이 회장은 "중국은 엄청난 국가 재원을 투입해 설계 분야를 키우고 있다. 팹리스가 2800여개에 달하는데 국내는 130개 정도로 추산된다"며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라는 생각으로 정부가 투자해야 다음 세대가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우리나라가 성장해나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도 최근 차세대 AI 원천 기술과 AI반도체 핵심기술 개발 지원을 위해 2026년까지 각각 3018억 원과 1조2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자금 지원도 의미 있지만 팹리스의 사업 특성에 맞춘 보다 촘촘한 지원책이 보완돼야 한다. 이 회장은 필요한 정책 중 하나로 멀티프로젝트칩(MPC) 지원 사업을 꼽았다. MPW가 하나의 웨이퍼에 여러 종류의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면 MPC는 팹리스 업체들의 각각 특화 기술을 하나의 칩 안에 집어넣는 것인데, 이를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 부담을 최소화하고 고객사에 빠른 개발 지원이 가능해진다.

특히 인재 양성 관련해서도 팹리스 특성을 고려한 실질적 정책이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약학과? 팹리스 인재양성 모델은 달라야"…'IDEC' 주목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계약학과 증설, 수도권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 등으로 2031년까지 인재 15만명을 양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계약학과 제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학과 계약을 맺고 졸업 후 인재를 유치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지금의 인재 양성 대책은 대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 회장은 팹리스 인재 육성 모델로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를 제시했다. IDEC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카이스트) 내에서 반도체 설계 분야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이 회장은 "IDEC 같은 교육기관이 외부 학생에게도 개방되면 팹리스 업계에 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 박인철 IDEC 소장을 설득했다"며 "박 교수와 카이스트가 팹리스의 만성적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결단을 내려줬고, 올해 '카이스트 IDEC 동탄 교육장'이 설립됐다"고 설명했다.

4개월의 단기코스지만, 학사 졸업 후 팹리스 입사 전 회로 설계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배울 수 있어 이곳 출신 인재를 영입하려는 팹리스 업계의 반응이 뜨겁다고 이 회장은 전했다. IDEC 동탄 교육장은 카이스트 교수가 중심이 되고 한국반도체공학회 교수들도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이 회장은 "처음 계획으론 전국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40명을 선발하려고 했는데 310명이 지원했더라"며 "인기가 많아 정원을 늘렸고 지금은 80명을 교육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IDEC 동탄은 팹리스 업계가 가장 효율적인 인재 양성 대책을 스스로 고민한 뒤 대학, 교수진과의 협업, 정부의 자금 지원까지 직접 이끌어낸 케이스다. 이제 팹리스 업계가 원하는 건 IDEC을 확대해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 반도체 설계교육센터'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반도체공학회 교수들 중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통해 설계 역량을 전수하고 싶다', '교육기관이 있으면 봉사하겠다'는 뜻을 가진 교수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또 "반도체 인재를 양성한다고 반도체 관련 학과만 키워서는 안 된다"며 "화학, 로보틱스, 바이오까지 여러 분야 학과가 함께 성장해야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는 설계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예를 들어 바이오 전공자가 반도체 설계 역량을 보완하면 바이오 산업에 필요한 반도체를 훨씬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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