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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반도체 정책 대담]"메모리 편중이 부를 위기…팹리스 키워 미래 대비해야"①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 회장, 유웅환 한국벤처투자 대표

김혜란 기자공개 2022-12-05 12:39:29

[편집자주]

반도체를 사이에 두고 국가 대 국가의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반도체가 한 국가의 안보자산으로 관리되면서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국 정부들은 자국 반도체 산업에 엄청난 지원을 쏟고 있다. 한국도 '반도체 초강국 건설'을 목표로 정부와 국회, 산업계, 학계 할 것 없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와 정부, 산학연을 대표할 인사들을 만나 지금 필요한 'K-반도체' 정책과 지원책을 살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2월 01일 10: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부의 '반도체 초강국 건설' 그림은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핵심은 취약한 팹리스(시스템 반도체 설계 전문) 생태계를 얼마나 키우느냐에 달렸다.

팹리스는 기술과 인재, 돈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성장하기 어렵다. 특히 연구·개발(R&D) 단계부터 양산까지 전 과정에서 자본 수혈이 제때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 반도체 업계에선 정부가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에 힘을 주고 있는 만큼 어느 때보다 정책 자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마침 벤처캐피털(VC)에 자금을 공급하는 한국벤처투자에 역사상 처음으로 '반도체 전문가'가 수장으로 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 박사 출신으로 미국 인텔과 삼성전자를 거친 유웅환 대표이사가 지난 9월부터 한국벤처투자를 이끌게 됐다.

팹리스 업계도 최근 분위기를 쇄신하며 도약 의지를 다지고 있다. 업계 목소리를 대변할 한국팹리스산업협회가 지난 8월 새롭게 출범한 것이다. 20년 넘게 팹리스 업계에 몸담아온 이서규 픽셀플러스 대표가 회장을 맡았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반도체 전문가이면서 새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임무를 안은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을 판교 테크노밸리 인근에서 만났다. 유 대표와 이서규 팹리스협회 회장은 이날 처음 만나 2시간 넘게 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지금이 팹리스를 키워야 할 '골든타임'이란 점, 어느 때보다 정부의 지원과 정책자금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는 점에 깊이 공감했다.

◇심각한 메모리 편중도, 대책 마련해야

현재 국내 팹리스는 130여개(한국팹리스산업협회 추산)다. 이들 기업을 다 합쳐도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1%대에 불과하다. 2019년 정부는 팹리스 시장점유율을 2030년까지 1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1%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장지배력을 두 자리 숫자로 바꾸려면 지금과는 다른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 회장은 "지금까지 정부의 반도체 정책은 제조업(메모리 반도체) 위주로 돌아갔다"며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의사결정권자의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팹리스가 2800여개에 달하는데 한국은 2000년대 초반보다 (시장 규모가) 더 쪼그라들었다"며 "미국과 중국, 대만 모두 팹리스 강화에 힘을 쏟는데, 한국이 뒤처지면 기술 속국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 회장(왼쪽), 유웅환 한국벤처투자 대표

유 대표도 한국의 높은 메모리 반도체 산업 의존도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팹리스 육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유 대표는 "작년까지 대한민국 반도체는 1280억달러를 수출해 666억달러 흑자를 냈다"며 "이 중 90% 이상이 메모리에서 나왔고 60억달러 정도만 파운드리(위탁생산)와 시스템 반도체에서 벌어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600억달러 중 D램으로 벌어들인 돈이 500억달러 규모는 될 것"이라며 "하나만 잘못되면 반도체 산업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지나친 메모리 편중은 반도체로 먹고사는 한국경제에 잠재적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메모리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아성을 무너뜨리려는 중국과 미국의 추격이 매섭다.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중국 메모리 기업들이 저가공세로 나온다면 로엔드(저사양) 칩 주도권은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

글로벌 메모리 시장점유율 3위 미국 마이크론의 추격도 무시할 수 없다. 마이크론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등에 업고 빠르게 캐파(생산능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5년 안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최강자'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반도체가 더 이상 메모리에만 의존해선 안 되고 다른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K-반도체 미래, 팹리스 강화에 달렸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팹리스의 중요성은 계속 커지고 있다. 유 대표는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물 간 통신 접점이 늘어나는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초연결 사회에는 다품종소량생산의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이를 설계할 팹리스의 역할이 부각된다는 설명이다.

또 "한국은 5세대 이동통신(5G) 인프라와 자동차 등 세트(완성품) 강국이다. 여기에 접목해서 쓰이는 에지반도체들을 잘 만들 수 있다"며 "팹리스와 세트사가 서로 협력해 (에지반도체를) 충분히 검증한다면 특정 목적의 시스템 반도체에선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레거시(구형) 공정을 키워 다양한 시스템 반도체 설계·제조 시스템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도 "그동안 정부가 팹리스에 국책과제를 주는 식으로 R&D를 지원했는데 양산까지 간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기술을 개발해도 제품 단계까지 가려면 수많은 허들을 넘어야 한다. 칩의 상용화를 이끌어내는 데 정책적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 대표가 말한 것처럼 삼성전자의 레거시 공장을 활용해 많은 제품을 만드는 등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와 이 회장은 대만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대만은 팹리스를 중심으로 파운드리와 OSAT(후공정 기업)를 키웠다. 이 회장은 "대만 파운드리 TSMC가 자국 팹리스가 설계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공정 피드백을 계속 주고받았다. 이를 통해 파운드리 공정이 개선되고 수많은 설계자산(IP)이 만들어졌다"며 "검증된 IP가 나오고 공정도 탄탄해지니 글로벌 팹리스들이 믿고 TSMC에 맡길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결국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도약도 자국 팹리스 육성에서 키를 찾을 수 있다. 유 대표가 반도체 전문가이다 보니 팹리스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 강화에 대한 밑그림을 갖고 투자 방향성을 잡는 데 많은 노력을 쏟을 거라는 업계의 기대감이 높다.

다만 유 대표는 "대내외 경제 환경이 어려워지며 국내 벤처투자 시장이 급격히 위축돼 스타트업과 투자자들 모두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도 "팹리스 최고경영자(CEO)들이 돈 구하러 다니느라, 기업공개(IPO) 하느라 바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유 대표는 "(팹리스 생태계가 클 수 있도록) 팹리스와 소부장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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