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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 메리츠의 비밀]모두 곡소리나는 부동산PF, 메리츠는 왜 조용할까⑧LTV·지방사업 비중 낮고, 선순위·중순위 위주 딜 참여...그룹차원 투심위, 리스크 관리 철저

최윤신 기자공개 2023-02-02 07:20:44

[편집자주]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 이례적인 메리츠의 행보는 언제 어디서나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 평가도 호불호가 갈린다. 메리츠의 혁신을 평가절하하는 경쟁 업체들도 물론 있다. 뛰어난 경영수완과 각종 성장 지표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승계를 포기한 과감한 지배구조 개편 승부수까지 띄웠다. 메리츠의 지배구조와 사업 전략, 현안을 세밀히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1월 05일 14: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수년 간 지속된 저금리 시기가 저물며 금융업계의 주요 돈 벌이 수단이 됐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장의 시선은 메리츠금융그룹에 쏠렸다. 부동산PF의 강자로 군림하며 잘나가던 메리츠그룹이 거대한 위기를 맞을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메리츠그룹은 ‘우리는 다르다’고 우려를 일축해왔다. 부동산PF 관련 사업과 투자 규모가 큰 건 사실이지만 우량자산을 철저히 선별한 만큼 질적우위에 있단 게 일관된 주장이었다. 부동산 PF의 위기론이 짙어지며 다수의 금융사들이 발을 빼는 분위기를 보인 지난해 하반기에도 메리츠그룹은 보란 듯 부동산PF 사업 규모를 늘리는 배짱을 보이기도 했다.

업황을 거스른 호실적은 시장의 의심을 돌려놨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3분기 실적은 초호황이던 2021년을 넘어섰다. 메리츠화재도 호실적을 냈다. 분기보고서 어디에서도 부동산PF 발 충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장의 시선은 우려보단 ‘경외심’으로 바뀌고 있다.

◇선순위 투자, 깐깐한 신용보강, LTV 50% 아래로

지난해 부동산 PF의 경고음과 함께 찾아온 메리츠그룹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계열사들이 가진 부동산 관련 익스포저 규모를 근거로 한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우발부채가 5조원을 넘어섰다.

자기자본대비 93%에 달하는 우발부채의 상당부분이 부동산PF와 관련한 것인 걸로 추정된다. 메리츠화재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국내 PF대출이 6조6000억원 수준으로 손해보험 업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각 회사의 부동산 PF관련 상세한 내역을 따져보긴 불가능하다.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는 업무보고서에 집계되지만 이는 일반에 공개되진 않는다. 다만 신용평가사의 보고서를 통해 이런 내용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순 있다.

자료 : 한국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8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증권사별 부동산별 PF익스포저 규모를 집계했다. 당시 메리츠증권의 부동산 브릿지론과 본 PF의 익스포저는 증권업계 유일하게 4조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대적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자기자본대비 비중도 가장 높았다.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PF 익스포저가 8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자기자본이 작은 중형증권사나 소형증권사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손실 위험이 높다고 보는 한신평의 기준을 통해 다시 집계하자 반전이 나타났다. △LTV 70% 이상 △중후순위 △Exit 분양률 70% 이하 △비서울 등의 기준을 모니터링 익스포저로 설정해 들여다 본 결과 이에 해당하는 메리츠증권의 규모는 1000억원에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자본 대비론 2% 수준에 불과했다. ‘질적 차별화’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메리츠증권 부동산PF 사업의 질적 차별화를 만든건 메리츠그룹 차원의 리스크 관리 원칙이었다. 메리츠화재의 경우 이 원칙이 더 보수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동일한 기준의 익스포저 비중은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 : 한국신용평가
메리츠그룹은 금융지주 차원에서 부동산PF 투자를 선순위로 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예외는 있지만 대개의 경우 이 원칙을 따른다. PF투자 중 선순위 비중은 메리츠화재가 98%, 메리츠증권이 9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츠증권의 선순위 투자 비중이 메리츠화재보다 낮은 건 주선하는 딜 중 일부 사업장의 시행사에 에쿼티 지분을 투입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도 참여하는 규모가 딜에서 생기는 수수료와 초과 이자분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규정해뒀다. 개별 사업장 단위에서 원금손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조치다.

부동산 PF 대출의 ‘신용보강’ 개념을 처음 도입한 회사이지만 여기에도 가장 깐깐한 원칙을 정해뒀다. 신용등급 A급 이상인 건설사에게만 책임준공을 인정해준다.

보유 부동산PF 대출의 평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의 경우 은행권의 60%보다 낮은 50%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도 원칙이다. 담보 가격이 반토막 나더라도 자금 회수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PF 대출의 평균 LTV는 상반기 말 기준 메리츠화재가 44%, 메리츠증권이 46%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 ‘따로 또 같이’ 머리 맞대 회의하고 독자적 판단

까다로운 원칙을 적용하면서도 우량 딜을 맡을 수 있는 비결은 부동산PF에 차별화된 역량 덕분인 것으로 여겨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다른 금융사가 부동산 사업을 멀리할 때 부동산PF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 영향력을 키웠다. 업계 상위 지위를 가져가며 강력한 성과 보상 체계를 바탕으로 우수 인력들이 유치한 게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힌다.

일각에선 메리츠그룹 차원의 협력으로 대규모 딜을 소화할 역량을 갖춘 게 양질의 딜을 흡수할 수 있게 된 배경이라고 보기도 한다. 지난해 진행한 마곡 마이스(MICE) 복합단지 PF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현재 추진 중인 지배구조개편이 이런 시너지를 강화할 것이란 기대가 나오기도 한다.

실제 메리츠그룹은 증권과 화재, 캐피탈 등이 모여 일주일에 1~2회 투자심의위원회를 열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주목할 점은 의사결정은 각 사가 독립적으로 행한다는 데 있다. 실제 메리츠화재의 투자 포트폴리오 중 메리츠증권이 소싱한 딜의 비중은 30%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너지에만 매몰될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며 “이를 경계해 최종 의사결정은 각 사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을 지는 체제”라고 설명했다. 메리츠그룹은 지배구조 개편 이후에도 이와 같은 의사결정 체계를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분권형 지주사’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핵심은 ‘프라이싱'

메리츠그룹이 부동산PF 사업을 잘하는 핵심은 경영전략의 핵심 키워드인 ‘프라이싱’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시장가격과 자체 기준의 손익분기점(BEP)을 비교해 시장 진입을 결정하는 의사결정 방식을 말한다. 위험조정수익률(Risk-adjusted return)을 따져 시장의 기회가 좋으면 비중을 많이 가져가고, 시장가격이 낮아지면 비중을 줄인다.

그룹 최고경영자들은 주력사업인 부동산PF도 결국은 프라이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합리적인 사업기회가 오면 잡고, 그렇지 않으면 잡지 않는다.

실제 메리츠증권의 우발부채 규모 추이를 살펴보면 이런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22년 들어 부동산PF 관련 채무를 줄이며 우발부채가 줄여왔는데, 부동산PF의 위기론이 본격화한 3분기 오히려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하우스들이 부동산 PF사업을 축소하며 우발부채를 줄이는 것과 상반된 움직임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타격을 받은 다른 하우스들이 관련 사업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을 메리츠그룹은 오히려 기회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물론 확대된 익스포저를 긍정적으로만 볼 순 없다. 한신평이 최근 집계한 메리츠그룹의 부동산 넷 익스포저(부동산 익스포저 총액 - 회수가능금액)는 3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특정한 분류의 자산에 익스포저가 집중된다는 건 크레딧 측면의 분명한 리스크임은 부정할 수 없다.

프라이싱 전략 역시 맹점은 있다. 부동산 PF의 채산성이 떨어졌을 때 대체할 사업·투자처를 찾지 못한다면 계열사 간 영업실적 동조화와 함께 높은 실적변동성에 노출되는 걸 피할 수 없다.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특히 메리츠증권의 경우 부동산PF관련 사업이 이익에서 차지하는 포션이 절대적”이라며 “리스크를 철저히 줄인다고 하더라도 부동산업황에 따라 이익변동성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건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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