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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종합상사 [thebell note]

정명섭 기자공개 2023-05-30 07:23:27

이 기사는 2023년 05월 26일 07: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상사부문 직원들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죠."

최근 만난 포스코인터내셔널 직원의 말이다. 이 회사는 국내 5대 종합상사 중 하나다. 올해 1월에 포스코에너지와 합병을 완료한 이후 친환경 에너지 사업 확대를 내세웠다. 지난달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전 선포식에서도 '에너지'가 핵심 전략사업 1번에 올랐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상사부문 매출 비중은 84.5%에 달한다. 합병 후에도 사명은 여전히 '포스코인터내셔널'이다. 상사맨이 서운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OO맨'으로 불리는 건 증권맨과 상사맨뿐이다", "라면부터 미사일까지 판다"는 자부심은 옛말이다.

'탈(脫) 상사' 지향은 이 회사만의 고민이 아니다. 삼성물산은 건설과 리조트, 패션 사업까지 해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SK네트웍스는 SK렌터카와 SK매직을 인수해 모빌리티, 가전 렌탈로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2018년에는 스타트업 투자도 시작해 사업형 투자회사를 자처했다. LX인터내셔널은 주력 사업이었던 석탄 트레이딩 비중을 줄이고 친환경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종합상사는 무역중개로 수출 최전선에 서있었다. 경제성장 초기에 기업들은 해외사업 역량과 네트워크 기반이 부족했다. 종합상사에 수출입 업무를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5년에 도입된 '종합무역상사 지정제도' 덕에 재벌그룹 종합상사만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다만 수출역군으로 한국 경제에 이바지한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제조사들은 해외에 지사를 직접 설립하기 시작했다. 쉬운 예로 삼성전자는 삼성물산에 반도체 수출을 맡기지 않는다. 기술 이해도가 높은 삼성전자 영업 담당자가 판매하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2009년 종합무역상사 지정제도 폐지 같은 정책적인 변화도 종합상사의 입지가 줄어든 계기다.

그렇다면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2020년에 이어 올해에도 일본 5대 종합상사에 투자한 건 어떻게 봐야할까. 일본 종합상사는 해외 자원개발 부문에 포지셔닝하고 있다. 1위 기업 미쓰비시상사 매출의 60%는 해외 자원개발과 트레이딩이 차지한다.

버핏은 자원을 확보하려는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종합상사의 사업역량이 되레 강점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본업에서 탈피하려는 한국 종합상사와 상반된 인식이다.

본업 강화와 사업 다각화 중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 종합상사 사업 모델이 일본에서 건너온 만큼 한국 종합상사들이 일본 기업이 간 길을 다시 답습할 수도 있다. 이래나 저래나 한국 종합상사들이 기로에 서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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