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0월 21일 07:49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칩 기술을 자신하는 이론이다. 인텔 공동창립자 고든 무어는 칩에 집적되는 트랜지스터가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1965년 예측했다. 쉽게 말해 반도체칩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작아지고 강력해진다는 소리다.인텔은 오랫동안 이 법칙을 (대체로) 증명하면서 반도체산업을 지배해왔다. 한 때 엔비디아와 AMD, TSMC의 가치를 모조리 합쳐도 인텔만 못했다. 전성기 인텔은 연간 TSMC 지출의 4배에 달하는 엄청난 예산을 연구개발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인텔은 더 이상 혁신의 리더로 불리지 않는다. 일련의 치명적 실수가 이어지면서 기술 최전선에서 밀려났다. 아이폰 출시로 시작된 모바일 혁명에 동참할 기회를 걷어찬 게 시작이다. 결국 2014년 TSMC가 아이폰 칩을 대거 주문 받으면서 판도가 뒤집어졌다.
설상가상 인텔은 AI(인공지능) 분야에서도 설 자리를 잃은 상태다. 반도체산업의 전환기,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중 어느 쪽이 기술의 미래를 좌우할 것인지를 두고 벌어진 다툼에서 인텔은 CPU를 골랐다.
반면 인텔보다 25년 늦게 등장한 엔비디아는 인텔이 철 지난 기술에 집착한다며 GPU의 잠재력에 베팅했다. 엔비디아의 GPU가 AI 작업에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이 입증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패배를 거듭한 인텔은 작년 파운드리 사업에서만 70억달러의 영업손실을 입었으며 올해는 상반기까지 적자가 무려 53억달러나 쌓였다. 인공지능을 구동하는 고급 칩 시장에서 거의 배제된 국면이다.
인텔의 이런 추락은 인선 탓이라는 말도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반도체를 잘 모르는 재무전문가가 수장이 되면서 투자에 몸을 사렸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인텔의 노력은 여전히 비용절감에 주축을 두고 있다. CFO 데이비드 진스너의 어깨가 무거워진 배경이다.
인텔은 최근 직원 1만5000명을 무더기로 내보냈다. 역사상 최대 규모다. 내년 지출예산에서 100억달러를 깎고 배당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수익에 관해 너무 낙관적이었다”고 진스너는 설명했다.
문제는 AI 패권 전쟁이 피를 튀기는 마당에 돈을 아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있다. 패블리스 라이벌인 엔비디아, 파운드리 라이벌인 TSMC는 전부 투자를 확대 중인데 인텔만 거꾸로다. 투자와 비용관리의 균형을 맞춰야하는 CFO로선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어찌됐든 진스너의 재정적 운명은 인텔과 묶여 있다. 그가 2022년 수락한 계약서에서 인텔은 "회사의 성공을 공유하고자 한다"며 주식 보상을 약속했다. 현재 인텔 주가는 22달러 주변을 맴돈다. 근 10년래 최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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