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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한국물 SSA 딜레마

이정완 기자공개 2024-10-29 08:12:43

이 기사는 2024년 10월 28일 07: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산업은행이 올해 2월 한국물 발행사 중 처음으로 SSA(Sovereign, Supranational and Agency) 시장에 진입했을 때만 해도 외화채 발행에 새로운 전기가 열렸다고 여겨졌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은 아시아 시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자산운용사나 은행·증권사를 겨냥해 투자자를 찾았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SSA란 이름답게 전세계 정부·국제기구·우량 기관을 핵심 투자자로 삼았다. 신흥 시장을 넘어 선진국형 발행사로 등극했다는 자부심이 컸다.

산업은행이 포문을 연 뒤 다른 우량 발행사도 SSA 조달 행렬에 동참할 듯 보였지만 생각보다 적극적이지 않다. 기획재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 때 한 차례 선택한 걸 제외하면 아직 다른 발행사는 SSA 스타일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사실 산업은행이 SSA 스타일을 택한 뒤 투자은행(IB) 업계 일부에선 우려 섞인 의견도 나왔다. 기대만큼 금리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IB에게 SSA를 추천하는지 물어보면 십중팔구 보수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SSA 스타일은 글로벌 채권시장에서도 초우량 발행사의 전유물이다. 한번 발행하면 수십억 달러 조달은 기본이고 분기마다 시장을 찾아 투자자를 만난다. 발행 조건도 국채금리를 기반으로 하는 신흥국형과 달리 시장에서 유통되는 금리를 기반으로 소폭의 스프레드를 제시한다. 투자자와 발행사 모두 안정성은 물론 시장 내 유동성까지 보장됐다고 공감하니 그들도 믿고 투자하고 발행사도 그만큼 금리를 적극적으로 끌어내리지 않는다.

산업은행의 첫 이정표는 성공적이었다. 2월 30억달러를 조달할 때는 발행액의 두 배 가까운 주문이 몰렸다. 하지만 지난해 50억달러를 조달한 산업은행은 매번 30억달러씩 발행할 필요가 없다. 그 대안으로 6월과 이달 초 10억달러씩 투자자를 찾는데 주문 규모와 금리 조건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분위기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그동안 산업은행이 수십년 동안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 확보한 투자자 풀(Pool)을 모두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SSA 투자자는 각국 중앙은행이나 우량 기관으로 제한돼 있다. 산업은행을 잘 아는 해외 유수 자산운용사의 관심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일까. 또 다른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은 SSA 시장에 뛰어드는데 조심스럽다. 발행 때마다 각국 중앙은행 투자자를 확보하고 있지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진 않는다.

산업은행은 한국물 첫 SSA 발행사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만 할까. SSA 투자자와 신뢰를 져버리지 않으면서 다른 방안을 모색할 수는 없을까. 공교롭게도 지난 7월 산업은행은 새로운 외화조달팀장을 맞이했다. 신임 팀장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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