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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산업으로서 바이오, 순수 과학의 함정

이기욱 기자공개 2025-05-22 08:32:46

이 기사는 2025년 05월 21일 07시59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바이오산업의 본질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 기술이 유일한 자산이자 수익원인 신약 개발 바이오텍 임원의 입에서 나온 얘기다. 바이오산업에 대한 기존 통념상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까지 들은 이후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바이오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당연히 그들이 갖고 있는 기술력이다. 후보물질을 효율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플랫폼 혹은 차별화된 타깃을 발굴하고 설계할 수 있는 항체, 항체와 페이로드를 연결하는 링커 기술 등 자신들만의 혁신 기술이 없다면 바이오텍은 탄생 조차할 수 없다.

뒤집어 얘기하면 전 세계 수많은 바이오텍들은 모두 저마다의 혁신 기술들을 무기로 갖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바이오의 기술력이 미국을 추월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현 시대에 기술력 우위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바이오텍의 생존을 결정짓는 요소가 과학 기술만이 아니라는 의미의 발언이다.

그가 말한 글로벌 시장에서 바이오의 본질은 'M&A'다.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들 중 어떤 기술의 상업적 가치가 가장 뛰어난지를 판단하는 능력과 해당 기술을 가장 비싸게 사줄 원매자를 찾는 능력이 바이오텍에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상업성이 부족하면 매물로서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핵심 자산이 될 수 없다. 비과학자 출신의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이기에 내놓을 수 있는 냉철한 분석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바이오텍 중에는 자신들의 파이프라인이 갖고 있는 과학적 의미에 매몰돼 있는 곳들이 있다. 본인이 초기 단계부터 연구·개발(R&D)을 시작한 의사 혹은 과학자 출신 창업자들에게 자부심과 같은 파이프라인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에게는 개발 이후 상업성보다는 자신들의 연구 결과가 결실을 맺는 것이 중요한 가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이오텍은 학교도, 연구기관도 아닌 기업이다. 특히 상장 기업은 파이프라인도 창업자 개인이 아닌 주주들의 소유다. 순수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가 아닌 경영자로서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지금과 같은 시장 침체기에 이러한 능력은 더욱 중요시된다. 시장에 유통되는 자금이 한정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업성이 떨어지는 파이프라인에 대한 과감한 개발 중단 또는 염가 매각 등 구조조정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산업으로서 바이오는 순수 과학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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