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피플&오피니언

기업집단이 '파이프라인'을 대하는 법 thebell desk

최은수 서치앤리서치(SR)본부 차장공개 2025-06-17 08:24:06

이 기사는 2025년 06월 16일 08시1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잠잘 때도 돈이 들어오게 하는 파이프라인을 찾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

워렌버핏이 남긴 수 많은 명언 중에 '파이프라인'의 가치와 중요성을 설명하는 격언이 있다. 그는 올해 95세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야 잠잘 때도 돈이 들어오게 하는 방법을 찾은 건지, 아니면 죽을 날이 한참 남았다 생각했던 건진 알 수 없다. 어쨌든 투자업계 전설의 은퇴를 즈음해 그가 강조한 파이프라인의 의미와 중요성을 되새겨봄 직하다.

산업에 따라 파이프라인의 의미는 다르다. 워렌 버핏은 돈이 들어오는 창구를 이야기했다면 신약개발에서는 후보물질 목록을 뜻한다. 정유 산업에서는 석유를 시추해 정제소, 저장소, 소비자에 이르는 물리적 유통 경로를 뜻한다.

중요한 건 최종 목표까지 지난한 불확실성을 이겨야 하고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단 공통점이 있다. 불로소득을 강조한 워렌 버핏이 현역 생활 70년 만에 은퇴를 선언한 것도 '알고보니 파이프라인 확보가 너무 어려워서 그랬을 것'이라는 익살스런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최근 국내 대기업집단에서 잇달아 바이오에 추동력을 더하고 있다. 여러 기업들이 중도에 사업을 접었고 성공한 사례도 별로 없지만 도전은 계속된다. 국내 경제와 산업이 성장기 지나 성숙 단계에 도달했고 새 성장동력을 찾을 곳이 바이오를 빼면 몇 개 되지 않는 점이 얽혔다.

바이오 파이프라인을 갖기 위한 국내 기업집단의 전략은 꽤 다양하다. 신약을 노리는 곳, 위탁생산이나 바이오시밀러, 또는 아예 색채가 다른 그린바이오를 보는 곳도 보인다. 일면 기업집단 별 전략 차이로 볼 수 있다. 해외에 빗대면 이런 다양성이 오히려 새롭다. 자금 투입이 먼저냐 연구가 먼저냐가 다를 뿐 해외에선 99.9%는 신약에 천착했다.

국내 기업집단이 파이프라인을 대하는 자세가 갈리는 근본적인 차이는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기까지의 '리스크'를 어떻게 헤지하느냐로 갈린다. 크게 10대 기업 안에선 'SK·LG그룹형'과 '삼성·롯데그룹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SK와 LG는 한 세대가 넘는 시간 동안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감내해 왔다. 공교롭게도 두 그룹 모두 자원개발, 특히 석유 시추 사업을 경험했던 공통 분모가 있다. SK는 현재도 석유화학을 주력으로 하고 LG는 계열 분리 전 GS를 통해 겪었다.

통상 석유 시추 성공 확률은 20% 수준이다.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높다. 신약 개발도 역시 실패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고 성패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다만 앞선 시추 경험은 리스크가 큰 사업을 경험해보면서 대응 체계를 내재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LG 그룹은 올해 3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통풍 치료제 3상 임상을 접는 용단을 내리기도 했다.

시추와 실패 경험이 없는 삼성과 롯데는 다른 방식으로 바이오에 접근했다. 두 그룹은 CDMO를 선택했다. 두 그룹의 규모나 업력 차이는 있지만 비교적 낮은 리스크와 빠른 수익화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위탁생산으로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이제 CDMO로 안정적인 기반을 갖췄다 판단한 삼성이 신약개발을 선언하고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확실성이 산재한 신약개발 국면에서도 "삼성이라면 잘하겠지"란 기대감이 크다. 다만 이런 가정을 덧대 본다. 십수년을 들여 개발한 신약 파이프라인이 효능을 입증하지 못했거나 상업성이 떨어질 걸로 판단될 경우다. 그때 삼성이 시추를 경험한 기업들처럼 "이 곳이 아니었나 봅니다. 덮읍시다"고 선언할 수 있을지가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더벨 서비스 문의

02-724-4102

유료 서비스 안내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4층,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김용관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황철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