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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마라토너'와 결별 택한 롯데

윤진현 기자공개 2025-10-03 07:51:58

이 기사는 2025년 10월 01일 08시2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마라톤은 완주가 중요하지만, '단거리 경주(스프린트)'는 기록이 전부다. 지금까지의 한국 대기업 인사제도는 마라톤처럼 꾸준히 달리면 언젠가 보상이 따라오는 구조였다. 그러나 롯데그룹이 이 공식을 깼다. 단거리 기록이 없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방식이다.

그 출발선이 바로 '직무기반 HR제도'다. GL(Growth Level)과 JL(Job Level)로 구분되는 체계는 과거 연차·호봉의 시간을 지우고, 성과와 직무 가치만을 남겼다. “성과 없인 보상 없다”는 원칙을 제도화한 셈이다.

롯데그룹은 전사적으로 새로운 직무기반 HR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유통부문의 경우 백화점을 시작으로 마트·홈쇼핑, 그리고 호텔롯데까지 단계적으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2026년까지 모든 계열사가 이 체계를 따라야 한다. 단거리 성과를 최우선으로 두고 속도를 재는 방식이 그룹 전반에 퍼지는 것이다.

속도가 전부인 단거리에도 변수는 있다. 계열사마다 사업 구조가 다른 만큼, 평가 기준과 등급 체계도 제각각이다. 롯데칠성은 GL1부터 GL6까지 세분화했지만, 롯데백화점은 GL4 체계만 도입했다. 같은 그룹 안에서조차 제도 운영 방식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이 곧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장의 반응 역시 엇갈린다. 동의율이 90%를 넘는 계열사도 있지만, 겨우 과반을 채운 곳도 있다. 성과 지표가 명확한 영업·생산 부서에선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지원·연구 직무에선 불안감이 크다. 숫자가 곧 성과를 말해주는 부서와 그렇지 않은 부서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는 것이다.

롯데는 이 틈을 메우고자 보완 장치를 꺼냈다. 단순히 도입에 멈추지 않고 매년 제도의 효율성을 점검해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피드백을 공식화해 불만과 혼선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성과주의가 제도의 이름값을 하려면, 공정성과 신뢰를 보완하는 이 사이클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마라톤을 달리던 러너에게 단거리 기록을 요구하는 건 쉽지 않다. 롯데가 요구하는 속도는 현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달리 방법도 없다. 성과 중심이라는 시대의 흐름 앞에서 기업은 결국 선택해야 한다. 롯데의 새 제도가 혁신의 제도로 남을지, 공허한 구호로 사라질지는 결국 실적이 말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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