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10월 13일 07시4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모태펀드가 지난달 내건 ‘LP 첫걸음펀드’ 출자사업 공고에는 이례적인 문구가 포함됐다. “국민연금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기금, 공무원연금기금 중 하나 이상의 기금이 출자한 조합을 운용한 이력이 있는 운용사만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정책자금을 재원으로 하는 모태펀드 출자 사업에서 그간 찾아볼 수 없었던 조건이다. 설립 5년 미만 벤처캐피탈(VC)을 대상으로 한 ‘루키 리그’ 등 출자 사각지대에 놓인 VC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있었지만 특정 LP로부터의 출자 이력이 없으면 참여를 제한하는 방식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 연기금이 중·대형 VC를 중심으로 출자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중·대형 하우스가 대상인 공모가 됐다.
VC 업계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책자금이 투입되는 모태펀드 출자 사업에 이런 조건을 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펀드레이징의 한파가 대형사보다 중소형사에 더 가혹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정성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진다.
이례적 조건은 LP 첫걸음펀드를 통해 벤처펀드에 첫 출자를 결정한 무역보험기금의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연기금으로부터 출자받은 이력이 있는 하우스가 자금 운용의 안정성이 높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LP첫걸음펀드를 추진한 중소벤처기업부 입장에선 이같은 요구를 거절하긴 어려웠을테다. 모태펀드 자금을 마중물로 새로운 기금의 첫 벤처출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만드는 게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LP첫걸음펀드는 참여의향 조사기간을 연장하는 등 기금을 모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연금이나 민간 금융기관의 자금은 얻지 못한채 국책기금인 무역보험기금의 자금 유치를 성과로 삼았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출자사업은 구조적으로 대형 하우스에게 유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차피 선정 가능성이 낮은 콘테스트에 중소형사가 불필요한 공력을 낭비하는 것보다 지원 대상을 명확히 구분하는 편이 낫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대형사와 소형사간의 형평성에 있지 않다. 모태펀드 출자사업에서 주요 연기금의 출자이력을 지원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한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모태펀드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GP를 선정하고 관리하는 한국벤처투자의 출자 프로세스보다 주요 연기금의 벤처출자 프로세스가 더 합리적일 것이라는 시장의 믿음을 중기부가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LP 유입을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정책자금의 원칙이 무너지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도 되새겨볼 부분이다. 민간LP 유입을 목적으로 설계된 '스타트업코리아펀드'는 처음 시행된 지난해 민간LP들이 관계사인 GP를 '셀프선발'하는 구조에 대해 수없이 많은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아무런 개선 없이 올해 2차년도 출자사업이 진행됐다. 결국 민간LP가 관계사인 VC에 출자하는데 정책자금인 모태펀드가 자금을 보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올해도 이어졌다.
정부가 공언한 세계 최고 수준의 벤처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출자자 유치를 통한 양적 팽창이 중요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위해 정책자금의 중심을 흔들어선 안된다. 한국의 벤처생태계는 정책자금이라는 큰 줄기에서 자라고 있다. 줄기가 굳건해야만 나무가 더 크게 자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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