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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나쁜 이사'보다 더 나쁜 건

허인혜 기자공개 2025-12-05 08:04:08

이 기사는 2025년 12월 03일 07:44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간통죄가 사라졌다. 배우자의 배신은 더 이상 형사재판으로 다루지 않는다. 싸움의 무대는 이혼과 재산분할을 다투는 민사·가사 법정으로 향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나 배임죄는 형사보다 민사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공정거래 위반과 금융사고도 과징금과 집단소송으로 무게추가 옮겨졌다. 국가의 형벌권 대신 당사자 간 다툼에 초점을 맞추는 건 하나의 추세다.

우리나라에서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배임과 형사처벌이다. '나쁜 것 같은' 이사에게는 기소가 뒤따른다. 유무죄를 다툰다. 하지만 법 개정 흐름 속 책임 논의의 영점은 다시 맞춰졌다. 민사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질의가 집요해진다는 의미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무엇을 알았고 어떤 정보를 확보했는지 또 다른 선택지는 없었는지를 묻는다. 이사 간 반대 의견은 어떻게 처리했는지까지 질문지가 빼곡하다. 이사는 이제 더 자주 더 오래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섰다.

전문가들은 설명과 입증이 전례 없이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에는 최선이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사가 신의성실과 주의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하려면 회의와 보고의 흔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판단의 기록이 필수다.

D&O 피보험자의 통지 의무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건을 인지한 때부터 보험사에 발생을 알린 시점까지의 간극을 두고 보험금 지급 여부가 갈린다. 한 기업에서는 통지를 미룬 데다 담당자의 소통도 미흡해 사외이사들이 소송 방어 비용만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다. 통지가 늦어지면 보험에 가입하고도 무보험자나 다를 바 없다.

기업과 이사회가 지금 대비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리스크 파악과 보고가 명확히 이사회까지 도달했는지, 중요한 논의와 이견이 회의록과 자료로 남았는지, 사건 인지와 통지에 대한 내부 기준이 마련돼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D&O 약관 안에서 누가 어디까지 보장받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라면 민사와 소송의 시대를 준비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D&O가 국내에 출시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개발 의지가 부족했다기보다 소송 자체가 없었다. 보험도 소송의 시대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필연적이다. 이사들의 손배소를 먹고 자랄 것이다.

아직은 충분하지 않은 보호막 속에서 나쁜 이사보다 증거 없는 이사가 더 나쁜 결과지를 받아들 수 있다. 잘했느냐 못했느냐가 아니라 '잘하려 했다는 것'을 보여 줄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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