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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재용의 삼성 [thebell desk]

최명용 산업2부장공개 2018-02-28 07:49:15

이 기사는 2018년 02월 27일 08: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조기 경영 복귀를 점쳤으나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은 353일을 옥중에서 보냈다. 그는 출소 소감에 대해 '지난 1년은 저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년 이 부회장은 어떤 생각을 곱씹었을까.

이 부회장의 가장 큰 고민은 아마도 '기업인'이란 키워드일 것이다. 재판 과정을 전후해 나온 이 부회장의 말을 반추해보면 '기업인'이란 키워드를 많이 썼다. 이 부회장은 "이병철 손자나 이건희 아들 이재용이 아니라 선대 못지 않은 훌륭한 업적을 남긴 기업인 이재용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해답으로 제시한 것은 '비전'이었다. 그는 "창업 3세는 창업자와 달리, 회사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분이 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업인 이재용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선대 회장을 잇는, 혹은 뛰어넘는 비전을 던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병철의 인재제일, 이건희의 신경영을 이어갈 비전이 필요하다.

이 부회장은 글로벌 감각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경영 시스템이나 새로운 시장을 겨냥한 성장 동력 등을 비전으로 내놓을 것이다.

또 다른 고민은 신뢰다. 이 부회장은 '바닥까지 떨어져 버린 기업인 이재용의 신뢰를 어떻게 되찾을 지 막막하다'는 말을 했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 싶다는 표현도 자주 썼다.

삼성의 신뢰 회복은 요원한 일이다.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때보다 차갑다.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에겐 청와대 국민청원이 빗발쳤다. 선대의 비자금 문제와 전 정권과의 결탁 사건도 다시 들춰 졌다. 이재용 부회장과 상관 없는 일이지만 멍에는 덧씌워지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한국 대기업들의 원죄이기도 하다.

신뢰 회복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한 두번 대국민 사과를 하고, 수천억의 돈을 내놓는다고 해서 차가운 시선을 걷어들일 국민들이 별로 없다. 기업인 이재용이 비전을 제시하고 깨끗한 경영을 이어가는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 차가운 시선을 견뎌가며 오랫동안 인내해야 하는 일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아직 이재용 다음 세대를 말하는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알수 없다. 하지만 포스트 이재용 시대를 고민하는 것은 지금 삼성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우리 사회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보여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삼성의 포스트 이재용 준비는 막막해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에 이어 오너 일가가 또 다시 삼성의 대권을 이어받기란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지분을 제대로 물려 받기란 불가능하다. 대주주에게 부과되는 할증율을 감안하면 1세대 100%는 2세대 35% 3세대 13%가 된다. 4세대로 넘어가면 한자릿수 지분율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 삼성전자에 회장이란 직함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음 세대엔 경영권을 내려주지 않을 것이란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더 좋은 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경영권을 내려놓겠다고도 했다. 삼성의 지배구조와 경영 구조는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최소한 오너 경영 체제가 아닌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벌써부터 정치권에선 삼성을 '국민기업'으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고 있다. 국민기업이 된 삼성이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외풍에 시달리고, CEO 교체기마다 세무조사를 받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정권의 낙하산 인사가 사외이사와 감사 자리를 꿰차는 관행도 눈에 그려진다.

지금도 외풍에 시달리는 데 그 시절이 되면 삼성의 경쟁력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삼성의 경쟁 상대는 글로벌 시장에 있는데 정치권의 표 놀음에 흔들릴 지 모를일이다. 포스트 이재용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삼성만의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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