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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 M&A 딜스토리]불안한 우협 지위, 독점권 WD에 뺏기기도⑤판게아가 앞섰지만 배타적 협상권 없어…WD 신뢰 이슈에 발목잡혀

윤동희 기자공개 2018-05-31 08:21:08

[편집자주]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의 도시바메모리 인수는 글로벌 테크 M&A 역사상 가장 주목할만 한 거래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2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거래규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향후 글로벌 플레시메모리 산업의 지형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서다. 이같은 임팩트를 잘 아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도시바메모리를 경쟁자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속속 뛰어들며 많은 뒷이야기들을 남겼다.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SK하이닉스가 있었다.

이 기사는 2018년 05월 28일 22:1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도시바 메모리 매각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우선협상자 지위를 처음 부여 받은 후보는 SK하이닉스가 참여한 K.K.판게아(Pangea) 였다. 하지만 이 우선협상권은 구속력이 없는 것에 불과했다. 도시바 입장에선 언제든 협상 상대를 자기 의지로 바꿀 수 있었다. 판게아와의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웨스턴디지털(WD)이 배타적 협상권을 가져가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SK하이닉스가 속한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으로선 절호의 인수 기회를 뺏길 뻔한 상황이 연출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도시바 내부 의사보다는 정치적 고려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 WD와의 협상이 개시된 이후에도 도시바 내부 분위기는 여전히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에 더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SK하이닉스 도시바 이사회·실무진 끈끈한 협력관계 바탕으로 '우위'

도시바의 공시 내역을 살펴보면 메모리 사업부 인수를 우선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주체는 거래 종료까지 오직 판게아 뿐이었다. 판게아는 베인캐피탈을 주축으로 하고 SK하이닉스, 애플 등이 참여한 한미일 컨소시엄이다. SK하이닉스가 장기간 도시바 이사회와 신뢰를 형성하지 않았다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특히 도시바와 하이닉스는 2011년 차세대 반도체 메모리 STT-M램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실무적인 스킨십도 좋은 편이었다. 한때 기술유출 지적으로 소송을 벌이기도 했으나 전격 합의, 소송을 취소하고 2014년에는 나노임프린트 리소그래피 기술 개발도 함께 진행하기로 하며 이전보다 더 전방위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판게아는 매각 공식화 후 3개월 만인 2017년 6월 21일에 우선협상자가 됐다. 이때까지는 공식적으로 이 컨소시엄이 판게아로 불리지는 않았다. '베인캐피탈과 일본정책투자은행(Development Bank of Japan) 컨소시엄'으로 지칭됐다. 같은 달 28일 도시바는 여전히 이 후보와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우선협상자 지위를 부여했을 뿐 배타적인 권리는 아니었다. 도시바는 SK하이닉스 컨소시엄에 우선협상자격을 줬지만 이후에도 WD나 다른 원매자와 꾸준히 거래 조건을 주고 받았다.

그렇다고 판게아가 마음 편하게 경쟁자를 제치고 거래에서 항상 앞서있던 것은 아니다. 도시바 이사회가 판게아를 우선협상자로 선정하자 WD는 즉각적으로 이 결정에 공개 반대했다. 6월 한달간 도시바와 WD는 치열한 공방을 벌이며 법정 소송도 불사할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다. 도시바는 WD가 합작투자 중에 도시바의 기밀 정보를 부적절하게 취득했다며 데이터 접근도 일부 차단한다고 날을 세웠다.

◇ 日당국 통해 들어온 WD 밀어주기 압박

WD의 공세는 말에만 끝나지 않았다. 거래 진행 중에 WD가 요구한대로 도시바로부터 독점 협상지위까지 부여받았다. 판게아의 우선협상 권리에 독점권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조치였다. WD는 2017년 6월 판게아의 우협 선정 소식에 강력반대하며 반도체 공장을 합작 운영 중이기 때문에 독점협상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정말 그 의견대로 배타적 협상권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WD가 정재계 네트워크를 활용, 일본 정부 관료의 입김을 빌어서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도시바가 WD 진영에 독점교섭권을 주기로 결정한 시점은 2017년 8월 24일이다. 이날 WD가 독점 교섭권을 갖는다는 내용을 이사회 안건으로 올리기로 한 것으로, 도시바 메모리 때부터 유력 인수 후보로 꼽혀왔던 WD로 급격하게 판이 기운 셈이었다. 판게아가 받은 우선협상권이 물거품이 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독점 교섭에는 나섰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경영진이나 실무진과의 지지 없이 이뤄진 협상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언론에 따르면 도시바와 WD는 매각 가격이나 일본의 의결권 확보에 대해서는 합의했지만 출자비율에서 합의를 보지 못했다. WD의 지분율을 15%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WD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배타적으로 협상을 한다 하더라도 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거란 설명이다.

도시바가 플래시메모리 사업을 위해 샌디스크와 손을 잡긴 했지만, 이는 WD가 샌디스크를 인수했던 2016년보다 훨씬 전의 일이다. 어쩌면 도시바에게 있어 WD는 우연한 인연이었을 뿐, 샌디스크와 같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파트너십을 맺은 사이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이런 히스토리에도 불구 WD가 샌디스크로부터 연유된 우선적 권리를 내세우며 매각을 방해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이 도시바 경영진과 실무자들에겐 오히려 반감을 생기게 하는 요인을 됐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WD와 도시바가 서로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었던데다 서양과 동양의 기업문화에도 차이가 있었다"며 "결정적으로 WD가 도시바의 독립 경영권을 보장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사회에서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8월 31일 도시바는 공시를 통해 WD는 물론 판게아, 홍하이(폭스콘) 등 복수의 컨소시엄과 계속해서 협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때 판게아는 경쟁자 중 유일하게 도시바 이사회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한발 앞서갔다. 여전히 구속력은 없었다. 독점 권한이 없고 협상 기한도 정해져 있지 않아 협상 진도가 빠른 것 외에는 큰 의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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