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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컨트롤타워…현안 해결 동력 잃어 [삼성 미전실 해체 2년]①소규모TF로 대체했지만 한계 뚜렷…김상조 위원장도 '새롭게 구축해야' 입장 밝혀

김장환 기자공개 2019-04-09 08:28:15

[편집자주]

삼성그룹의 핵심 의사결정 기구였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지 2년이 지났다.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 이름을 바꿔가며 60여년 동안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던 미전실의 해체는 삼성의 안팎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전실 해체 후 삼성은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지, 그리고 이에 따른 한계가 무엇인지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19년 04월 08일 07: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2년여 전 이재용 부회장(사진)이 꺼낸 한 마디 말로 시작된 미래전략실(미전실) 해체는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그룹 제반 의사결정 구조의 정점에 서 있던 미전실 해체는 별도 지주사를 갖추지 않고 있던 삼성에게 '그룹 해체'를 선언한 것과 다름 없었다. 미전실이 곧 그룹 상징이자 계열사 전반을 어우르는 컨트롤타워였기 때문이다.

미전실은 고 이병철 명예회장 시절인 1959년 삼성그룹 내 만들어진 비서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재계에서 굵직한 이슈가 있을 때 해체와 신설을 반복하며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미전실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그룹 의사결정의 핵심 컨트롤타워 역할 기구로 자리매김 했다는 점은 큰 차이가 없었다.

이재용
그런 미전실의 해체는 이 부회장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이 부회장은 2016년 12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위에 증인으로 참석해 "여러 의원님들의 질타도 있었고, 질문 중에 미래전략실에 관해 많은 의혹과 부정적 시각이 많은 것을 느꼈다"며 "국민 여러분들께나 의원들께 부정적 인식이 있다면 없애겠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의 비난성 발언이 쏟아지자 내놓은 답이었다. 이 부회장이 미전실 해체를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인지, 오랫동안 숙고한 결과물인지는 정확히 파악이 되지 않는다.

미전실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청문회 전날까지 몇 주 동안 (질의응답) 시뮬레이션을 계속 했는데, 당시 미전실 질문이 나올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여러 답변도 준비를 해뒀었다"며 "미전실을 해체하겠다는 답은 없었다"고 기억했다. 다른 관계자는 "미전실 해체를 아예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최악의 경우'에 꺼내기로 했던 답안지"라며 "이 부회장이 긴장해 (미전실 해체를) 말했던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삼성은 이후 미전실 해체를 전격 발표한다. 미전실을 전담했던 최지성 부회장(실장), 장충기 차장(사장) 등 주요 임원들이 퇴진했다. 미전실 내 전략·인사지원·경영진단·기획·금융일류화추진·커뮤니케이션 등 7개 팀은 해체 수순에 돌입했고 이곳에 소속돼 있던 250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미전실 해체는 이 부회장 발언 후 두 달여만인 2017년 2월 마무리됐다.

미전실의 해체와 동시에 삼성의 계열사 의사결정 협의체 역할을 했던 '수요 사장단 회의'도 폐지됐다. 사장단 회의가 없어진 데는 미전실 해체도 그렇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 수감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비록 이 부회장은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나 지난해 2월 복귀했으나 삼성 미전실과 사장단 회의는 여전히 부활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삼성은 이후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한 어려움을 다방면에서 겪고 있다.

삼성도 미전실 같은 기구의 필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해체에 따른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왔다. 이사회 역할을 강화한 게 대표적이다. 이 부회장이 영어의 몸이었던 시절 이상훈 의장이 이사회를 이끌며 그룹 경영 쇄신을 주도했다. 사업지원·EPC경쟁력강화·금융경쟁력강화 등 3개 소규모 TF를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내에 각각 만들며 컨트롤타원의 '트로이카' 체제도 완성시켜뒀다.

미전실 조직도

그러나 이사회와 TF의 미전실 역할 대체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이 많다. 지주사 체제 완성과 지배구조 개편 등 시급한 숙제를 진두지휘할 만한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TF 체제 2년 동안 삼성이 해결한 굵직한 현안은 순환출자 해소 외에 눈에 띄지 않는다. 각각 TF가 구심점 없이 서로 떨어져 각기 다른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사업지원TF는 사실상 인사 역할에 치중하고 있고, 나머지 TF는 각각 건설과 금융 산업 등 각 분야에 국한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삼성 미전실을 두고 비판적 견해를 지속해왔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조차 미전실 부활 필요성을 언급했을 정도다. 그는 지난해 5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으로 쪼개진 미전실로는 삼성이란 거대 그룹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고 새로운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삼성 저격수'로 이름을 알리며 미전실 조직 자체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해왔던 김 위원장이 꺼낸 발언이었던 만큼 극히 이례적으로 해석됐다.

재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사명감이 강한 사람인데, 공정위원장을 떠나기 전에 삼성과 현대차 등 국내 재벌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어한다"며 "미전실이 없으니 대관 등 담당자가 없고, 그래서 김 위원장 발언에도 삼성이 크게 움직임이 없으니 스스로 답답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과거 이재용 부회장이랑 독대도 하며 지배구조 논의를 했던 사이인데 요즘은 그런 만남을 들어본 적도 없다"며 "그러니 공식 대화 창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삼성 내부에선 미전실 부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지배적이다. 미전실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처럼 공론화돼 있지만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각종 국내외 투자, 고용창출 등을 두고 많은 부분을 바라고 있지만 삼성의 지배구조에 일대 변화를 유도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삼성 입장에선 지배구조에 변화를 줄 명분과 실익을 찾기도 힘든 상황이다.

다른 관계자는 "공정위, 금융위, 금감원, 그리고 국회까지 나서 삼성에 대한 압박 수위만 높이고 있고,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릴 정도로 한 기업만 겨냥한 특별법 통과를 국회가 추진하고 있을 정도"라며 "제조(삼성전자)와 금융(삼성생명)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보이는 규제 상황에서 삼성이 미전실까지 다시 만들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이 미전실 없이 지낸 지난 2년 동안 각종 의사결정 과정에서 구심점을 잃은 듯한 모양새를 보여준 만큼 이를 확실히 대체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업계 지적도 많다. 미전실은 단순 대관 업무를 떠나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를 위한 개편 절차와 사업 역량 확대를 이끄는 핵심 기구로서 역할도 해왔다. 60여개 달하는 계열사, 360조원 넘는 자산을 갖고 있는 삼성이 과거 통일성을 갖춘 기업전략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미전실의 힘이란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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