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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중 9개는 실패…'성숙기 진입 위한 성장통' [바이오 NRDO의 재발견]⑥"기술수출에 승부 걸고 실패 두려워 말고 지속적인 도전해야" 조언

조영갑 기자공개 2019-09-24 08:19:27

[편집자주]

개발전문 바이오 벤처인 NRDO가 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융성하던 NRDO의 생태계가 국내에도 확산될 전망이다. 신약 개발에만 올인하던 바이오 산업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뜨고 있는 한국 NRDO 업체를 조망해 한국 바이오 산업의 지형도를 그려 본다.

이 기사는 2019년 09월 23일 10:53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의 신약 개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약이 있다. 엘지생명과학(옛 엘지화학)이 만든 퀴놀계 항생제 '팩티브'(Factive)'다. 2003년 팩티브는 제약 역사상 처음으로 FDA 품목허가를 받으면서 한국 바이오의 신화를 새로 썼다. 국내 연구진들의 손으로 만든 신약의 수출길이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당시 연 1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됐다.



팩티브는 탄생의 과정에서 난관도 많았다. GSK가 FDA 신약승인을 실패한 이후 2002년 제휴 종결을 선언하면서 프로젝트가 사장될 뻔했다. 다시 기술을 반환 받은 연구팀은 독자적으로 FDA 재승인에 도전해 이듬해 승인을 받아냈다. 글로벌 빅파마의 냉혹한 시장논리를 학습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팩티브의 '원대한 꿈'은 달성되지 못했다. 개발엔 성공했지만 1000억원 이상의 수익은 공염불이 됐다. 2010년 기준 약 160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상업화에는 실패했지만 팩티브는 이후 연구자, 개발자들에게 '경험의 유산'이 됐다. 팩티브 이후 엘지생명과학이 조직재편을 거치면서 관련 인사들이 대거 바이오벤처 업계로 유입됐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넓게 보면 최호일 펩트론 대표,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도 포함된다.

이들 중 상당수가 투신한 분야가 NRDO 분야다. 신약 개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 전문 바이오 벤처 산업을 키우고 있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는 "팩티브 이후 엘지생명과학 출신 연구자, 개발자들이 바이오 벤처로 쏟아져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신약개발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개발에 집중하는 NRDO의 생태계 역시 근원을 따져보면 팩티브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NRDO 분야는 개발에 집중하는 비즈니스다. 신약 개발 실패 사례를 딛고 성장하는 곳이다. 신약 후보 물질을 도입해 개발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최소화하고 라이선스 아웃으로 조기 엑시트 기회를 확보한다. 바이오 산업의 성숙기에 NRDO 분야를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엘지생명과학 팩티브 한국 신약개발의 도도한 흐름 만들어

최근 한국 제약 바이오 산업은 연이은 실패를 맛보고 있다. 에이치엘비의 임상 3상 도달 실패, 한미약품의 기술권리 반환, 코오롱 인보사 사태, 신라젠 3상 실패 등으로 투자 심리는 최악의 국면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이오 전체의 실패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전문가는 "(신약개발은)10개 중 하나만 성공하는 게임인데, 9개가 실패한다고 해서 이 시도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면서 "우리는 지금 실패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안에서 희망(wishful thinking)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팩티브의 경험이 현재 신약개발의 젖줄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개발 중심 NRDO의 생존방식에 대해 전문가들은 몇가지 조언을 했다. 우선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빅파마들이 어떤 '적응증'을 서칭하고 있는지 간파해야 한다. 결국 기술수출에 승부를 걸어어 하는 입장에서 후보물질의 unmet needs(미충족수요)가 얼마나 크며, 해당 물질이 얼마나 혁신적(innovative)인지가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최근 가장 빈번하게 성공사례로 거론되고 있는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의 기술이전은 정확하게 이 공식을 충족한 사례로 평가 받는다. 이정규 대표는 "빅파마는 미충족수요 중에 대체 불가하고 중증인 것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면서 "한참 거론되는 적응증은 이미 꺾이고 있다는 방증이므로, 생소한 분야를 서칭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실제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임상을 진행한 fibrosis(섬유화증)은 당시 파이프라인으로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브릿지의 성공 이후 국내에도 최소 2~3곳에서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머크 출신 김규찬 란드바이오사이언스 대표 역시 비슷한 조언을 했다. 김 대표는 "얼리 스테이지에서 기술이전을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데, 후보물질 단계에서 사실상 승패가 갈린다"면서 "혁신적이지 않으면 절대 사가지 않거니와 제품화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후에 시장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엘지화학의 팩티브의 예처럼 개발이 완료돼도 시장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최근에는 NRDO 중요성 인식하고 빅파마서 별도 조직 설립도

전문가들은 글로벌 바이오텍이 오랜 기간 구축해 놓은 'attrition(도태)'의 문화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도 전했다.

최근 글로벌 기업 바이오젠과 일본의 에자이는 2014년부터 개발한 알츠하이머 파이프라인의 개발 중단을 공식화했다. 이른바 BACE 저해제(E2609)로 치매를 치료하겠다는 컨셉인데, 잇따른 임상 실패에 따라 손실비용만 최고 1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양사는 마지막 파이프라인인 아밀로이드 저해요법 파이프라인 BAN2401의 개발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바이오젠과 에자이의 사례처럼 임상이 고도화된 이후 파이프라인을 도태시킬 경우 치르는 비용이 막대해진다. 초기 단계에서 혁신성과 시장성을 걸러낼 수 있으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NRDO 비즈니스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다.

초기 후보물질 발굴부터 비임상 독성시험, 전임상, 임상 등 CRO(임상수탁기관)와 합을 맞춰야 하는 NRDO 버추어텍 입장에서 외부 파트너링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최근에는 단순히 임상을 수탁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전략적 제휴를 하면서 임상 전략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가 용인에 소재한 큐베스트바이오다. 브릿지바이오가 기술수출한 BTT-877 저해제 등의 비임상 시험 서비스 디자인, IND/NDA 독성시험 등을 담당하면서 기술수출에 일조했다.

최근 글로벌 추세는 빅파마가 개발전담 조직을 별도로 두면서 자체 NRDO를 육성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는 전언이다. 한 전문가는 "빅파마에서도 얼리 스테이지(보통 임상2상 개발)만 전담하는 조직을 따로 떼어 설립하는 등 NRDO 고유 영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면서 "이는 2상 이전의 초기 개발과 3상 이후 개발논리는 전혀 다르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한다. 우리도 궁극적으로 이렇게 가야한다"고 밝혔다.

실제 노바티스의 경우 바이오메디컬 리서치 조직이 얼리스테이지 단계의 개발을 담당하고, 그 이후 파마슈티컬 본사에서 3상 및 시판을 할지에 대해 결정한다. NRDO의 영역을 빅파마에서 품기 시작한 셈이다. 녹십자에서도 초기 개발을 위한 RAED(Research and Early Development)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팩티브
2003년 국내 최초로 FDA 품목승인을 받은 엘지생명과학의 팩티브. 성공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신약개발업계에 과제를 던져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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