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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디스플레이]후발주자 중국 기업들, 한국 어떻게 따라왔나⑨인재·장비 '줄줄' 국가차원 보호 미흡…OLED 격차 벌리기 숙제

김장환 기자공개 2019-10-14 08:10:23

[편집자주]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LCD 강자로 글로벌 시장을 오랜 기간 누벼왔던 LG와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이 중국의 매서운 추격에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TV용 LCD는 중국에 1위 자리를 넘겨준지 오래다. 삼성과 LG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전환을 본격화했다. 산업 전반의 '대격변'이 불가피하다.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겪고 있는 위기의 실체와 미래를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19년 10월 11일 15: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를 앞세워 세계 시장을 선도했던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영광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중국 업체들의 발빠른 성장으로 시장 판도는 바뀌었다. 앞선 기술로 볼 수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아직 앞서나가지만 시장이 훨씬 큰 액정표시장치(LCD) 시장 1위 기업은 이제 중국이다. 2018년 점유율 역전 현상이 이뤄졌고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디스플레이 굴기 전면엔 중국 BOE가 서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첫째는 시장을 오판한 탓이다. 중국의 기술 개발이 한참동안 뒤쳐져 있을 것이란 자만심이 화를 불렀다. 둘째는 중국 당국의 대대적인 지원 영향이다. '인해전술' 국가답게 디스플레이 산업 육성에 상상 못할 대단위 자금과 인력을 쏟아 부었다. 국내 핵심 기술 인재도 '고액 연봉'을 앞세워 영입에 열을 올렸다. 한국이 국가 차원에서 디스플레이 기술 보호에 소극적이었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아직 끝난 싸움은 아니다.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LCD 시장에서 서둘러 발을 빼고 있고, 중국 업체들은 자국 기업들끼리 '치킨싸움'을 벌이고 있다. 중국도 어느 시점엔 산업 구조조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 상당수가 정부 지원이 중단되면 도산할 수밖에 없는 사업 구조다. 한국디스플레이 업계가 발 빠르게 OLED 시장을 개화하면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

◇韓기업 덕 급성장 '아이러니', LCD 시장 패권 2년전 역전

업계에 따르면 BOE가 2015년경부터 최근까지 디스플레이 사업에 쏟아 부은 자금은 30조원대에 달한다. 정작 BOE가 직접 투자한 자금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2조7000억원 외 대다수 자금을 중국 정부가 지원했다. 당국의 대규모 지원 덕분에 기술력을 발 빠르게 키웠다. BOE는 2년여 전부터 10.5세대 LCD 생산라인을 돌리고 있다. 대형 LCD 디스플레이 시장을 과거 선도했던 LG디스플레이 8.5세대 LCD 장비보다 한 발 앞선다. 국내 기업들은 대형 LCD 디스플레이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당분간 낮다고 봤지만 시장은 다르게 갔다.

BOE 등 중국 업체의 성장으로 글로벌 LCD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은 2018년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중국 점유율이 30%를 넘어섰고 한국 점유율은 29.5%로 내려앉았다. 전년까지만 해도 25.2%, 32.9% 점유율을 차지했던 시장이다. 기술 격차를 크게 줄인 중국 기업들이 공급 물량까지 대거 쏟아내 비롯된 일이다.

디스플레이 패널 판가는 공급과잉 탓에 급격히 떨어졌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올 들어 대규모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탈(脫) LCD'란 백기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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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나이스신용평가.

사실 중국 업체들 성장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건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이다. 무엇보다 인재들을 많이 내줬다. BOE 등 중국 업체들이 한국 디스플레이 인재들을 빼간 건 이미 오래 전부터이고, 현재도 활발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중국 업체로 흘러 들어간 인재들은 발 빠르게 기술을 확충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통상 퇴직 후 2년간 취업제한 계약을 임직원과 맺고 있지만 중국 기업으로의 이직 과정에선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취업제한 규정이 있다고 해도 일일이 다 추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퇴사 후 재취업 가능 기간이 지나기도 전에 BOE로 가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쪽에 갔었던 사실을 숨기고 다시 회사로 돌아온 사람마저 있다"며 "BOE로 이직해 비자 문제로 귀국 후 재출국을 하다가 국정원에 잡힌 직원도 있었는데 핵심 기술 인재이거나, 회사에서 취업 문제를 확인하고 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 다 잡아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핵심 장비도 마찬가지다. BOE와 CSOT 등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LCD뿐 아니라 최신 기술인 OLED 마저도 한국 기업들이 사용하는 동일 장비를 가져가 사용하고 있다. 열처리와 레이저 등 전공정을 비롯해 검사 등 후공정 장비도 일본산보다 한국산이 더 많이 들어가 있다. 일부 업체 시설은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 설비 배치까지 똑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OLED의 경우 기술 자체는 국가핵심기술로 묶여 있어 수출이 제한되지만 장비는 예외로 빠져 있어 기술이 유출되는 케이스가 많다.

다른 관계자는 "중국 BOE로 이직한 직원을 만났었는데 벤더에서 생산한 설비와 우리 쪽 계열에서 만든 장비마저 똑같이 들어와 있다고 했다"며 "장비 가동 핸드북도 한글로만 써져 있는 기계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설비를 보면 BOE 등 중국 업체들이 결국 한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을 따라잡을 수밖에 없는 시장 구조라는 걸 알 수 있다"며 "차라리 서둘러 이직을 하는 게 낫다는 식의 영입 제안을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의 투자가 지난 몇 년 동안 주춤한 영향도 작용했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는 국내외 설비 투자를 크게 줄여왔다. 양사 모두 LCD 시장 철수를 확정하고 후속 절차를 진행 중이다. 국내 장비사 입장에서는 LCD뿐 아니라 OLED 모두 대단위 투자를 이어가는 중국 업체들을 겨냥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업체와 물꼬를 트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로 '아사'할지 모른다. 너도 나도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장비 수주전에 뛰어들어 한국 고유 기술이 담긴 장비가 넘어간 배경이다.

◇중국 기업간 '치킨게임' 시작, OLED 시장 대비만이 '살길'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중국의 디스플레이 산업 성장세도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혀 붕괴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현지 업체들끼리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탓이다. 치킨게임으로 디스플레이 판가는 지속해 낮아졌다. 생산할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임에도 LCD 디스플레이를 만들어 공급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앞서 관계자는 "생산원가보다도 못 미치는 가격에 LCD를 공급하는 중국 기업들이 있어 시장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다"며 "기술력이 안되는 CSOT 등 기업이 저가 공세로 밀어 붙이면서 BOE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지 시장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대다수 중국 기업이 당국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국 지원이 끊기면 고사하는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도 상당수 발생할 수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비 대다수가 달러로 투입되고 있는데 미국 환율 방어가 지속되면 국가 투자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미국과 환율 전쟁으로 중국이 디스플레이 기업을 계속 지원하기는 힘들고, 이렇게 되면 과거 철강 분야처럼 디스플레이 산업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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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이 같은 시장 상황이 현실화되기 전까지는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세울 수 있는 대책이 많지 않아 보인다. 치킨게임에 함께 휘말려선 손실만 키울 뿐이다. 결론적으로 신기술 시장을 대비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LG디스플레이는 내년 말까지 LCD 라인 대다수를 OLED로 전환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중소형 부문도 개발을 완료한 플라스틱 OLED(P-OLED)로 빠르게 넘어갈 계획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13조원 규모 퀀텀닷(QD) 디스플레이 투자를 발표했다. 중소형 OLED에서는 이미 최강자인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번 투자를 통해 대형 패널 부문도 OLED로 전면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중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숙제는 생산성 향상이다. LG디스플레이는 중소형, 삼성디스플레이는 대형 OLED 수율을 크게 늘려야 한다. 기술 격차도 중국 기업들과 더 벌려야 한다.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의 OLED 기술력은 중국 보다 최대 5년 정도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받지만 LCD 분야에서도 이 같은 생각에만 젖어 있다가 결국 뒤쳐졌다.

기술 보호도 LCD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의 물심양면 지원이 그만큼 중요하다. 과거를 되짚어보고 미래를 준비한다면 옛 명성을 되찾는 것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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