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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M&A]'포니 정'의 아들 정몽규, 모빌리티 꿈 이룰까20년 전 끝난 자동차 인연, '비행기'로 이어진 열정

이명관 기자공개 2019-11-11 09:17:00

이 기사는 2019년 11월 08일 15: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동차와 항공기. 탈 것의 형태도 다르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업종도 다르지만 모빌리티(Mobility)라는 울타리에서 보면 '탈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정몽규 HDC 회장은 젊은 시절 자동차에 온 힘을 쏟아 낸 '모빌(Mobile) 맨'이었다. 1991년 현대자동차 상무에 올랐고 1993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만34세였던 1996년엔 현대자동차 회장직을 맡았다.

자동차산업을 향한 정몽규 회장의 열정은 10여년 만에 꺾였다. 1999년 현대자동차의 경영권이 정몽구 회장에게 넘어갔고, 정몽규 회장은 부친인 고 정세영 명예회장과 함께 현대산업개발로 적을 옮겼다. 이후 건설업에 매진하며 10대 건설사로 성장시키며 건설맨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그의 가슴 한 구석엔 여전히 모빌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의지를 드러내며 정몽규 회장의 눈길이 다시 모빌리티로 향하고 있다.

◇'유력 원매자' vs '운영 리스크' 시선 공존

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지난 7일 마감된 아시아나항공 M&A 본입찰에 참여했다. 그동안 강력한 인수 의지를 피력해온 만큼 본입찰 참여는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사실 아시아나항공 M&A가 본격화되고 SK와 GS, 한화 등 유수 대기업들의 이름이 거론됐을 때 현대산업개발은 인수 후보군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대산업개발도 예비입찰 참여 직전까지 장고를 거듭했다. 아시아나항공을 둘러싼 부적정인 이슈들에 부담을 느꼈던 데다, 유수 대기업 참여가 점쳐지다 보니 무리라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막판 유력 원매자로 분류됐던 후보군들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관심을 접으면서, 이에 해볼만한 딜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대우와 컨소시엄을 맺은 것도 예비입찰이 임박해서다. 예비입찰 전날 인수전 참여를 공식화했을 때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동안 현대산업개발은 대형 빅딜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몽규 회장은 그동안 빅딜보다는 경영난으로 인해 기업가치가 떨어진 알짜 매물을 M&A 대상으로 삼아왔다.

사업 연관성 측면에서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건설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보니 항공사 운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면세사업이 있긴 하지만 운영 노하우를 공유할 실질적인 연관성은 없었다. 여기에 아시아나항공의 잠재된 우발부채도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를 인수하게 되면 운영리스크에 대한 부분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특히 우발부채를 어떻게 관리할 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산업개발 내부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다. IB업계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 재무담당 일부 임직원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우려섞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며 "우발부채의 사이즈를 가늠할 수 없다보니 이 같은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안팎에서 유력 원매자로 꼽히면서도 한편으론 우려의 시선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정몽규 회장은 뚝심있게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임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딜에 참여하고 있는 현대산업개발의 의지가 상당히 강력하다"며 "정몽규 회장이 무조건 인수해야 한다는 특명까지 하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몽규 회장이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는 아시아나항공 자체로도 관심을 느끼기에 충분한 매물인 데다, 해묵은 고민거리인 '건설 편중' 문제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몽규 회장은 HDC그룹을 자산 10조원대 대그룹으로 키워냈음에도 '종합부동산·인프라그룹'에서 그 이상의 도약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20년 전 작별 현대차, '포니'로 남아있는 모빌에 대한 열정

정몽규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려는 모습을 두고 현대자동차 시절 못다이룬 '모빌리티 꿈'을 항공을 통해 이루려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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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몽규 회장에게 자동차는 어쩌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의 성장의 중심엔 아버지인 정세영 명예회장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세영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으로 초대 현대자동차의 사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1970년대 초만 해도 국내 자동차 산업 수준은 낮았다.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부품을 받아 완성차를 생산했다. 한국은 자동차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1973년 정세영 명예회장이 완성차 개발에 뛰어들 당시 자동차 강국들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평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국내 최초의 고유 자동차 모델인 '포니'이다. 이후 포니를 세계에 알린 것도 그다. 1974년 포니는 이탈리아 토니로 모터쇼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그에겐 '포니 정'이란 별명이 붙었다.

자동차업계에 젊음을 바친 정세영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규 회장이 현대자동차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1988년 학업을 마치고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그는 9년만인 1996년 불과 34세의 나이에 회장에 올랐다. 젊은 시절 자동차에 열정을 바치며 아버지의 길을 뒤따랐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에서의 그의 커리어는 1999년 멈췄다. 당시 현대가의 경영권 분란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현대자동차의 경영권이 정몽구 회장에게 넘어갔다.

그렇게 정세영 명예회장과 정몽규 회장은 현대산업개발로 쫓기듯 넘어왔다. 자동차산업과는 전혀 다른 건설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몽규 회장은 자동차산업에 활용되던 제도들을 건설업에 도입,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갔다.

건설업계 최초로 품질관리를 위한 '라인스톱제'를 도입한 게 그 시작이다. 라인스톱제는 자동차 제조라인에서 불량이 생기면 모든 생산 공정을 멈추는 형태다. 건설공사에서 이같은 제도가 도입된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정몽규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에 A/S 등 새로운 경영시스템을 도입, 건설현장의 오랜 관행이었던 '한묶음' 방식의 자재투입을 자동차 부품처럼 낱개로 바꿨다.

'포니정재단'도 현대자동차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정몽규 회장은 정세영 명예회장이 작고한 이후 그의 뜻을 승계하기 위해 2005년 11월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명도 정 명예회장의 별칭을 따서 붙였다. 포니로 대표되는 도전과 혁신 정신을 계속 이어나간 셈이다.

현재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막강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만약 이 같은 예상이 현실화되면 현대산업개발은 이미 업계 탑 티어인 건설업에 더해 항공업을 또따른 핵심 사업으로 가져가면서 한단계 격상된 새로운 그룹의 면모를 갖출 수 있게 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몽규 회장은 자동차가 아닌 항공을 통해 잠잠했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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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국내 첫 고유 모델 자동차 '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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