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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성평가 무용론]도입 20년간 82곳 상장…알짜 기업 있었나①기술력 심사에 평가기관·기법 적정성 의문…제도 재검토 필요성 대두

오찬미 기자공개 2019-12-16 08:13:34

[편집자주]

기술성 평가 제도가 도입된지 20년이 지났다. 한국거래소는 적자 상태의 기업들도 기술력을 인정받으면 상장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줬다.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장기간 기술 개발에 나서라는 취지다. 대표적인 분야가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는 신약개발 바이오 기업들이다. 기평은 바이오 산업 육성에 기여를 했지만 잡음도 많다. 기평을 통과한 기업들이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거나 반대로 우량 기업은 기평 통과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더벨은 기평을 둘러싼 논란을 재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해봤다.

이 기사는 2019년 12월 04일 08: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술성 평가는 기술을 보유한 벤처들의 상장을 위한 제도다. 이 제도는 기술 기업과 거래소의 입장이 맞물린 지점에 놓여 있다. 벤처들은 연구개발 자금을 조달하는 게 목표다. 반면 거래소는 우량 기업들을 상장해 투자자들과 기업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거래소 입장에선 검증 안된 기업을 걸러내고 우량 기업을 상장시켜야 한다. 기술성평가는 우량 기업이란 잣대 대신 기술력을 평가한다. 미래에 우량 기업이 될 곳에 자금 조달 창구를, 투자자들에겐 투자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거래소는 전문기관의 평가와 전문가집단의 자문 결과를 반영해 기술성 평가를 해왔다. 제도도 시대에 맞춰 정교화해왔다. 하지만 제도 도입 20년이 지나면서 기술성평가의 신뢰성과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평가기관들의 참여가 제한적이고 평가 툴은 불투명하고 평가자의 전문성과 공정성이 부족해 평가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지난 15년간 기술 기업 82곳이 기술성 평가를 통과하고 특례상장을 했지만 아직 이들 중 확실한 기술력을 입증한 곳은 드물다. 흑자를 내는 기업도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거꾸로 기술성 평가에서 고배를 마셨는데 얼마 안있어 조단위 라이선스 아웃 실적을 내는 곳도 있었다. 신뢰를 잃은 기술성평가 제도의 재수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이유다.

◇20년간 10번 수술걸친 기술성평가

바이오 기업들의 상장 '발판'이자 '첫 관문'인 기술성평가 제도는 미국이나 유럽 등에는 없는 우리나라의 유니크(Unique)한 상장제도다. 1999년 5월 기술평가 제도를 도입한 한국거래소는 2005년부터 적자상태인 바이오 벤처기업도 기술평가를 통해 특례상장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경영성과가 부족하더라도 보유기술을 기반으로 기술성과 성장성이 인정되면 상장할 수 있도록 거래소 문을 개방했다. 미국 나스닥 등 해외 시장에는 자본금 등 일부 외형요건을 충족하면 상장할 수 있는 제도는 있지만 상장 과정에서 기업의 보유 기술을 평가하는 절차는 없다.

기술평가제도의 시행 첫 해에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기술평가기관으로부터 평가서를 발급받아 제출했다. 2001년부터 거래소가 전문평가기관을 직접 지정해 운영하면서 평가결과를 예비심사에 반영하는 게 의무화됐다. 2006년부터는 전문평가기관 2곳으로부터 기술평가를 받도록 강화됐다. 2011년에는 기술평가 업종을 확대하고 2개의 전문평가기관 중 하나라도 A등급 이상이 나오면 상장예비심사청구가 가능하되 최소 BBB등급을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이 붙었다.

2014년에는 미래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원칙적으로 특례를 적용하도록 했다. 업종제한이 폐지되고 외형요건 중 자기자본 요건도 10억원으로 완화됐다. 평균 1개월 정도 소요됐던 거래소의 기술평가 대상 판단 절차도 폐지돼 신청 즉시 기술평가가 진행됐다. 2015년에는 상장주관사가 직접 기술평가기관을 선정해서 기술평가를 받도록 자율적 평가 신청시스템이 도입됐다. 거래소 관계자는 주관사에 평가기관 선정을 맡겼을 당시 기업 90%가량이 기술평가에 통과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거래소는 TCB 1곳과 연구기관 1곳 등 평가기관을 직접 지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평가툴·평가단 투명성 부족

기술평가제도는 지난 20년간 바이오기업들의 상장을 도우면서 '기술'을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보완돼 왔다. 하지만 평가를 받는 기업 입장에서는 아직 '기술성평가'라는 고유 이름만큼 제대로 기술평가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평가기관의 기술 평가항목(평가툴)이나 평가 시스템에 대해서도 뚜렷이 외부에 공개된 내용은 없다. 평가툴과 평가단 인력풀의 구성은 기관의 고유 업무인데다, 평가기관이 외부에 감사를 받거나 내부 평가시스템을 외부에 알릴 의무도 현재는 전혀 없다.

내·외부 인력이 혼용돼 구성되는 평가단도 때마다 달라져서 평가자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작용한다. 기술평가를 거쳐 상장에 성공한 바이오 기업들의 기술 성공가능성을 확인하기까지도 긴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신약개발이 실패해도 상장과정에 참여한 이해관계자 가운데 책임지는 곳은 없다.

상장한 바이오기업 대다수는 기술성 평가 당시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05년부터 올해11월까지 총 82개 기업이 술평가를 거쳐 특례상장했다. 이중 80% 가량이 바이오 업체로 기술특례상장은 바이오기업이 증시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실적을 낸 곳은 드물다.

2005년 이 제도로 첫 상장한 헬릭스미스(전 바이로메드)나 바이오니아는 15년째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바이오니아는 상장 이듬해인 2006년 영업이익 36억원을 기록해 흑자를 낼 것이라고 공시했지만 실제론 34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흑자 전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내비쳤지만 아직까지 흑자전환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정작 기평이 우량 기업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NRDO업체인 브릿지바이오는 두 차례 상장을 시도했다. 하지만 신약 물질을 도입해 가공한 뒤 다시 라이선스 아웃을 하는 NRDO란 업종에 대해 평가기관들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두차례 기평 시도는 모두 무산됐다.

하지만 브릿지바이오는 올해 7월 베링거인겔하임과 섬유화 간질성 폐질환 치료 신약 후보물질 BBT-877을 계약금 4500만유로(약 600억원), 단계별 마일스톤 최대 11억유로(약1조4600억원)에 기술수출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진 뒤 재도전한 기술성 평가에선 양호한 점수를 받은 것으로 뒤바뀌었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눈여겨 보는 기술력을 기평 평가기관은 제대로 판별하지 못한 사례다.

기평을 통과한 기업 중 흑자전환에 성공한 곳은 11곳이다. 상장 이후 시차와 개별 기업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겠지만 흑자 기록 확률이 13%라는 것은 기평 제도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허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전문 평가기관의 기술평가가 제대로 구성된 평가단과 평가툴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상장을 돕는 주관사나 거래소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지도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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