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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 철학의 '큰 산' 이채원 한국밸류 대표 가치투자 1세대..K-펀드 누적수익률 435% '전설', 10년투자 1호 장기고객 70%

허인혜 기자공개 2020-01-14 13:08:08

이 기사는 2020년 01월 10일 11: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강대권 유경PSG자산운용 CIO, 김민국·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 최웅필 KB자산운용 상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

매니저 개인의 개성과 트랙레코드를 뽐내기 바쁜 금융투자업계에서 이토록 많은 스타급 펀드매니저가 한 사람을 '선생님'으로 추천하기는 쉽지 않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사진)를 두고는 스승이자 멘토로 꼽는 매니저가 수두룩하다.

이채원 대표는 국내에 가치투자라는 길을 연 장본인이다. 국내 가치투자는 이 대표와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 양대산맥이 일궜다고 단언해도 좋다. '이채원 키즈'라는 말은 흔한 서술어다. '이채원'이라는 브랜드는 이제 가치투자와 이채원 키즈, 가치투자의 미래를 통틀어 대변할 만한 대명사다.

이 대표는 가치투자를 '잘 맞는 옷'이라 칭했다. 가치투자는 1초만에 이해하거나, 영원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로 가치투자와의 운명적 만남을 설명했다. 그 스스로도 가치투자와 닮았다. IT버블 당시 30대의 펀드매니저로서 가치투자의 소신을 지키려 한 달간 병실에 앓아누우면서도 IT 투자 유혹을 이겨낸 일화는 '조용한 고집쟁이' 이 대표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달리는 말에는 타지 않는다" 벤저민 그레이엄·워런 버핏식 '고집'

'수익률 -40%'. 가치투자의 대가 이 대표에게도 쓰라린 순간은 있었다. 한신증권(동원증권의 전신)에 입사한 지 9년차인 1996년 동원투신운용의 신출내기 펀드매니저로 데뷔한 그는 1년 만에 IMF외환위기를 맞았다. 코스피는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졌다. 코스피가 800에서 300 미만으로 무너진 차에 이 대표의 운용 펀드도 수익률 마이너스(-) 40%까지 하락했다. 코스피 대비 선방한 숫자였지만 고객의 돈 앞에서 겸손했던 그에게는 아픈 경험이었다.

이 대표는 일본 사무소 파견 시절 읽었던 가치투자 서적을 떠올렸다. 처음 접하고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던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다. 가치투자는 1초만에 이해하거나, 영원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구절처럼 가치투자는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시장 붕괴는 역설적으로 그에게 가치투자의 길을 내줬다. 이듬해 말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 펀드로 불리는 '동원밸류 이채원펀드'를 내놓고 1년만에 130%에 가까운 수익률을 올렸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그런 이 대표의 가치를 믿었다. 김 부회장의 평소 지론인 '한번 신뢰하면 끝까지 간다'에 딱 들어맞았던 게 이 대표였던 셈이다. 이 대표가 동원증권 주식운용팀장부터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을 지내던 2000년~2006년, 김 부회장의 믿음 아래 동원증권의 고유계정으로 론칭한 'K-펀드'의 누적수익률은 435%로 경이로운 수준이다.

"벤저민 그레이엄식 시대는 끝났다. 워런 버핏식 투자가 새로운 가치투자의 길이다." 이채원 대표는 동원증권 상무 시절인 2004년 깜짝 발언을 내놨다. 저가의 주식을 매수해 묻어두고 기다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식 전략에서 벗어나 기업의 미래가치를 보고 밸류에이션에 맞춘 투자를 하는 워런 버핏식 투자로 선회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즈음 그의 수식어도 가치투자 전도사에서 가치투자의 대가로 격상한다.

가치투자에 몸 담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가치투자 매니저의 DNA로 변화한 뒤부터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단 한 주도 담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돈다.

그의 고집은 떡잎부터 이어져 왔다. 1999년 새롬기술과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IT주가 무려 100배에 가까운 성장세를 내면서 동원밸류 1호의 수익률이 빛을 잃었다. IT버블에 편승해야 한다는 투자업계 분위기와 고객의 욕설 섞인 항의 속에서 이 대표는 실제로 한 달간 병가를 내고 병원에서 앓아 누웠다고 한다. 그는 장고 끝에 가치가 확실하지 않은 IT주를 사지 않았다. IT버블은 2000년대 초 붕괴됐다.

가치주의 투자의 색채가 확고해지자 하락장에도 여유가 생겼다. 롯데칠성의 주식을 9만원에 사들였던 이 대표는 이후 롯데칠성이 6만원까지 떨어지자 오히려 두 배로 비중을 높였다. 20년 전 그의 인터뷰를 되돌아보면 가치평가의 기민함에 놀란다. 이 대표는 당시 롯데칠성을 두고 "독점적인 시장점유, 뛰어난 마케팅 능력, 실력대비 저평가, 탄탄한 재무구조를 고려하면 롯데칠성에 견줄 만한 회사를 찾기 쉽지 않다"고 했다. 기업의 가치만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주가가 떨어지는 일은 오히려 가치투자자에게 호재라는 자신감이 붙었다. 농심과 GS건설의 가치를 발굴해 대박 수익을 낸 장본인도 그다.

고스톱과 포커 중 늘 포커를 집어드는 게 이 대표다. 고스톱은 손실이 무한대로 날 수 있지만 포커는 패가 좋지 않으면 '다이(die)'를 선언해도 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책은 여러 권 사고 주요 서류는 3부씩 복사해 둔다. 언제나 잃지 않는 길, 고객의 돈 앞에 겁쟁이로 남는 쪽에 선다. 이 대표가 2007년 펴낸 저서 '이채원의 가치투자'의 투자 서론은 "나는 겁이 많다. 겁이 많으니 소심하다"로 시작한다.

그런 그가 길러낸 '이채원 키즈'들은 선배이자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2006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 입사해 이채원식 투자법을 배운 1기 공채 멤버들은 자산운용사 대표와 간부로 성장해 '가치투자의 가치'를 설파하는 중이다. 펀드매니저를 신규공채로 뽑는 이유는 '백지 상태'의 신입사원들에게 가치투자의 철학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강대권 유경PSG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정신욱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코어밸류운용본부장, 최웅필 KB자산운용 상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1기 멤버다. 이채원 대표는 가치투자자 모임을 통해서도 김민국·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 등 후임 양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름 내건 '이채원 펀드' 1년만에 수익률 130%…K-펀드, 누적수익률 '435%'

이 대표의 대표펀드 트렉레코드는 가치투자의 바이블로 삼을만 하다. 장기투자와 가치투자라는 두가지 원칙을 지키면서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린 펀드라서다.

본격적인 가치투자의 포문이라고 할 만한 '동원밸류 이채원펀드'는 설정 1년이 채 안된 시기에 수익률 130%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롯데칠성, 유한양행 등 '저PER(주가수익비율)주', '저PBR(주가순자산비율)주'를 편입한 덕이었다.

IT버블로 동원밸류 펀드가 주춤하던 차, 이 대표는 김 부회장의 '동아줄' 700억원을 잡고 K-펀드를 출시한다. 2000년부터 2006년간의 누적수익률은 무려 435%. 같은 기간 코스피 수익률이 56.4%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2006년 시장에 등장한 '한국밸류 10년투자 주식펀드 1호'는 단기투자 일색이었던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이 대표가 당시 전무로 승진하며 내놓은 첫 번째 펀드였다. 펀드명부터 가치투자와 장기투자를 내걸었다.

자연스럽게 그를 믿는 고객들이 모였다. 한국밸류 10년투자 증권투자신탁1호 고객 중 열에 일곱은 장기투자자 자리를 지켰다. 수익률이 잠시 굴곡을 겪는 때에도 고객들의 마음부터 챙겼다. 2008년 키코(KIKO) 주가 하락으로 10년투자 주식펀드 1호가 코스피보다 낮은 수익률(-23.5%)을 내자 투자보고서를 통해 "증시상황에 관계없이 고객들의 소중한 자산에 손실이 발생한 것은 전적으로 밸류운용의 잘못"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투자철학을 고수하며 꾸준하고 뚜렷한 레코드도 남겼다. 차화정 강세와 대장주 랠리의 등락폭 속에서도 조용하게 수익을 올렸다. 10일 기준 누적수익률은 105.89%, 패밀리펀드 설정액은 5408억원이다. 2007년 내놓은 또 다른 10년투자 펀드 '한국밸류10년투자연금증권전환형투자신탁'은 누적수익률 72.04%, 전체 설정액 5803억원을 기록 중이다.

10년 투자 시리즈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후하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10년 투자' 시리즈는 이름처럼 10년 동안 고객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의미가 크다"며 "10년 누적수익률도 우수해 가치투자의 성과를 증명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대표는 "해외에서는 10년 장기투자가 흔하다고 하지만 단기투자 문화가 만연한 국내 투자 특성상 10년간 한 상품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로도 훌륭한 업적"이라고 짚었다.

이 대표는 2019년 말 겸직해오던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CIO 자리에서 물러났다. 경영에 한 걸음 더 집중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10년투자 시리즈의 밑바탕이 되어준 고객들을 위해 펀드 운용은 이어 나간다. 2019년 진출한 헤지펀드 시장에서도 이채원표 가치투자가 재차 꽃을 피울 예정이다.

이 대표와 더불어 가치투자의 두 거목으로 꼽히는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이 대표를 두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 했다. 허 대표는 "펀드 운용 경력이 얼마나 길었는지 보다 고객이 그 펀드 매니저를 믿고 기다릴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이채원 대표의 일관된 투자철학이 고객의 신뢰를 얻고, 신뢰가 다시 가치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졌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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