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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막오른 이재용 시대…非오너 체제 준비 착수②소유·경영 분리 초유의 실험…바이오 이후 신사업 육성 숙제

김슬기 기자공개 2020-06-23 07:05:14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6월 17일 07: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4년 5월 10일, 삼성을 이끌어 온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그날을 기점으로 삼성은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의 무게추가 넘어오면서 지배구조와 사업구조 재편이 동시에 이뤄졌다.

이건희 체제의 삼성이 '확장'으로 요약된다면 이재용 체제에서는 '선택과 집중'으로 명명할 수 있다. 화학과 방산부문의 정리가 이뤄졌고 바이오라는 신성장동력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여기에 자동차 전장업체인 하만(Harman) 인수로 정점을 찍었다.

삼성은 외부 변수에 따른 리스크에도 노출됐다. 최순실 게이트가 삼성 스캔들로 번지면서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급기야 이재용 부회장이 한차례 구속 수감이 되기도 했고 아직도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이재용 부회장 체제는 '오너 없는 삼성'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삼성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이사회와 각사 전문경영인 중심의 경영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한발 더 나아가 4세 경영 포기 선언을 통해 새로운 경영 시스템을 예고했다.

삼성은 그동안 강력한 오너 경영을 통해 빠른 성장을 이뤘다. 이 부회장 체제와 그 이후에 소유와 경영을 어떻게 분리할 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껏 오너가 최종 판단을 내려왔던 계열사간 사업재편이나 대규모 투자 및 인수합병(M&A) 등에 대한 의사 결정을 어떻게 할 지도 관건이다. 과도기 상황에 안정적인 성장과 포스트 재벌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당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간이다.

◇ 화학·방산 덜어낸 삼성, 신성장동력 '바이오·전장' 집중

2014년과 2015년 삼성은 재계를 뒤흔드는 결정을 하게 된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이었지만 삼성은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사업재편을 진행했다. 당시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의 작품이었다.

우선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종합화학)의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삼성토탈(현 한화토탈) 등을 묶어 한화그룹에 넘기기로 하면서 사업개편의 서막을 알렸다. 이듬해 삼성은 롯데그룹에 삼성정밀화학(현 롯데정밀화학), 삼성BP화학(현 롯데BP화학), 삼성SDI 케미칼 부문(현 롯데첨단소재) 등을 매각하면서 사업 정리를 마무리한다. 그룹 간 빅딜 규모만 5조원에 달했다.

삼성 내에서 화학·방산 부문은 비주류로 분류됐다. 하지만 타 그룹에서의 위상은 달랐다. 한화그룹과 롯데그룹은 영토 확장의 발판이 됐다. 한화그룹은 단숨에 방산부문 1위 기업으로 올라섰고 롯데그룹은 유통과 화학이라는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었다.


사업을 덜어낸 삼성은 신성장동력 찾기에 나섰다. 이는 2015년 삼성전자 내 전장사업부 신설과 더불어 2016년 하만 인수로 윤곽이 드러났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로 취임한 뒤 처음으로 진두지휘한 딜이었다. 9조원이라는 거래금액도 어마어마했지만 이 부회장이 구상하는 삼성의 미래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하만은 JBL, 마크레빈슨, AKG 등 고가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와 커넥티드카·카오디오 등 전자장비(전장) 분야에서 손꼽히는 기업이다.

인수주체인 삼성전자와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전기자동차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접목할 수 있는 전장사업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과 하만의 공연장 및 영화관용 음향·조명기기 사업과도 협력할 수 있고 TV·스마트폰 등 각종 제품과도 접목이 가능하다.

전자 외에도 삼성이 낙점한 신성장동력은 바이오였다. 2011년 설립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힘을 쏟았다. 이 부회장 체제에서 2015년말 세계 최대 바이오 플랜트 준공을 알렸고 이듬해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창립 10여년 만에 글로벌 1위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업체로 성장했다.

◇ 포스트 이재용 체제…계열사 간 컨트롤타워 '숙제'

*이재용 부회장
이 부회장의 공격적인 행보는 2017년 국정농단사건에 휩싸이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듬해 이 부회장 석방됐고 삼성의 총수로 올라선다. 그해 5월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집단 동일인을 변경하면서 공식적으로 삼성 총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총수가 된 뒤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격적인 투자계획과 과감한 결정은 결국 오너의 결단력에서 나온다. 이 부회장 공백시기 삼성은 제대로된 투자 계획을 내놓지 못했다. 2018년 8월 삼성은 인공지능(AI)·5세대 이동통신·바이오·반도체 중심 전장부품 등 4대 성장사업에 25조원을 투입하는 것을 포함한 총 180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2019년에는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로 하는 '반도체2030' 비전을 선포했고 총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어 10월 퀀텀닷(QD) 디스플레이에 13조10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올해에도 낸드플래시, 파운드리 등 공격적인 투자계획을 내놓으면서 삼성의 DNA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부회장 체제 하에서의 투자는 역으로 그 한계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라기보다는 그동안 하던 사업의 연장선에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바이오 및 전장 사업 외에 새로 발굴한 신성장동력 논의는 아직 구체화된 것이 없다.

과거 삼성은 오너를 구심점으로 두고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등의 컨트롤타워를 운영해왔다. 컨트롤타워의 명암은 있었지만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2017년 3월 미전실 해체로 공식적인 컨트롤타워는 사라졌다. 또 삼성의 계열사 의사결정 협의체 역할을 했던 '수요 사장단 회의'도 폐지됐다.

삼성은 오너의 부재를 대비해 진화된 형태로 시스템을 정제해 왔다.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이사회 체제를 촘촘하게 만들었다. 우선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 경영 독립성을 강화했고 외부 감시기관으로 준법감시위원회를 뒀다. 이사회 내에는 경영위원회·감사위원회·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내부거래위원회·보상위원회·거버넌스위원회 등 다수의 소위원회를 구성해 전문성을 강화했다.

문제는 각 계열사를 잇는 구심이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삼성물산 EPC경쟁력강화 TF, 삼성생명 금융경쟁력강화TF 등 계열사별 TF가 이를 대체하고 있지만 예전만큼 그룹을 아우르는 결정을 하지 못한다. 지배구조 개편 등 시급한 숙제를 지휘할만한 역량은 보여주지 못했다. 이처럼 분산된 의사결정 시스템 하에선 신규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것이 어렵다.

이 부회장은 4세 경영 포기를 선언했다. 향후 소유와 경영에 대한 분리 방안에 대해 심도깊은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다. 지금까진 이 부회장이라는 구심점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그룹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이를 대체할 포스트 재벌 시스템을 구상하는 것도 이 부회장의 몫이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CEO) 체제에도 장점이 있지만 과거와 같은 계열사간 사업재편이나 대규모 투자, M&A에 대해서는 쉽사리 결정할 수 없다"며 "삼성의 성장을 이끌어온 오너십과 향후 경영체제에 대해 어떻게 중간점을 찾아갈지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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