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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 대부' 이채원 용퇴, 미완의 과제 남겼다 가치투자 진화 추진, 스타일별 외연확장 시도 등 후임 CEO '책임막중'

이효범 기자공개 2020-12-10 13:30:25

이 기사는 2020년 12월 09일 12: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사진)가 최근 사의를 표명했다. 국내에 가치투자가 뿌리를 내리는 데 일등공신인 그가 사의를 표명한 건 시장에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동안 가치투자의 외연 확장을 추진하면서 변화를 꾀했지만, 미완의 과제로 남아 더욱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이 대표는 더벨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운용스타일에 변화를 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고,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사임을 결정했다"며 "앞으로 시간을 갖고 향후 거취에 대해 고민을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영에서 손을 떼고 당분간 고문직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가치투자 1세대…한국밸류운용, 가치투자의 산실로

이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운용철학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6년 설립된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 창립멤버로서 오랜기간 운용을 총괄해왔다. 그가 대표이사에 오르기 전까지 3명의 대표들이 교체될 동안 이 대표는 최고투자책임자(CIO)로서 10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

가치투자에 특화된 하우스로서 운용철학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공개채용으로 뽑은 신입사원을 도제 방식으로 키워온 것도 운용철학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채원 키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가치투자 매니저들을 양성하는 사관학교 역할을 했다.

이 대표는 국내에 가치투자를 뿌리 내리는 데 일조한 인물이다. 동원투자신탁운용 시절인 1998년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 펀드로 불리는 '동원밸류 이채원펀드'를 내놓고 저평가 된 국내 주식에 투자해 1년만에 130%에 가까운 수익률을 올렸다. 또 동원증권 주식운용팀장을 맡았던 2000~2006년 동안 고유자산을 태운 'K-펀드'를 운용해 400%대 수익률을 냈다.

당시 성과는 가치투자의 가능성을 재확인하는 계기였다. 또 한국투자금융그룹이 가치투자 전문 운용사를 설립한 배경이기도 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2006년 출범 직후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를 설정했다. 이 펀드는 지금까지도 운용사의 간판펀드다.

가치투자는 장기투자의 밑바탕 위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는 수익자가 1~3년 내 환매하면 수익의 30~70%까지 환매수수료로 내야 하는 다소 파격적인 구조로 만들어졌다. 3년간 환매를 하지 말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설정액 1조원을 넘는 공룡펀드로 커질 정도로 흥행몰이했다.


◇가치투자자 이채원, 삼성전자 투자에 끊임없는 고민

이 대표는 그동안 수익가치와 내재가치가 저평가된 저PER(주가수익비율),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기업에 주로 투자했다. 순이익과 순자산에 비해서 주가가 현저하게 저평가 된 기업이다. 기업의 가치 평가는 수익가치, 내재가치, 성장가치 등 관점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 중 수익가치와 내재가치를 대변하는 지표가 PER과 PBR로 꼽힌다.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도 이같은 전략 아래 한동안 양호한 성과를 기록했다. 펀드 출시 당시 연간 목표 수익률은 10%로 책정했고, 채 10년도 되지 않아 누적수익률 100%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 펀드는 2011년을 기점을 삼성전자 주식 비중을 확대했다. 2014년 하반기에 삼성전자는 펀드 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목이었다. 당시 평가액만 1700억원에 육박했다.

그러나 그해 연말을 전후해 삼성전자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현금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당시 운용보고서를 통해 "스마트폰 시장의 치열한 경쟁이라는 변수로 인해 현 시점에서 삼성전자의 기업가치를 계산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며 "다른 투자 대상에서 더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국내 증시의 대장주인 삼성전자 투자는 이 대표의 끊이지 않는 고민거리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운용을 담당하는 동안 삼성전자에 투자한 건 극히 일부다. 이 대표가 삼성전자에 투자한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가 될 정도였다. 가치투자 관점에서 보면 삼성전자보다 더 나은 종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전자 주가가 큰폭으로 상승하면 가치주 펀드들이 벤치마크를 하회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는 이 대표 뿐만 아니라 국내 가치투자자 전반의 고민이기도 했다.

◇스타일별 가치투자 개념 재정립…성장가치 개척 노력

이 대표는 2017년말 정기임원 인사에서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4번째 대표이사에 올랐다. 당시에도 CIO를 겸직하는 형태로 경영과 운용을 모두 총괄했다. 그는 대표이사가 된 이후에도 가치투자 철학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또 이를 진화시키는 방안도 꾸준히 시도해왔다.

이른바 가치투자의 '외연 확장'이었다. 전통적인 개념의 가치투자와 더불어 가치투자의 영역을 한층 더 세분화하려는 시도였다. 가령 '기다림의 미학'으로 불리는 가치투자에 적극성을 더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행동주의 전략도 시도했다.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고 주주서한, 경영진 면담 등을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해달라는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에는 조직개편을 통해 본부였던 운용조직을 3개로 나눴다. 정통 가치주를 운용하는 코어밸류본부를 비롯해 배당가치주, 중소가치주 등에 투자하는 스타일밸류본부, 사모펀드와 글로벌펀드를 운용하는 멀티운용본부 등을 새로 만들었다. 기존 가치투자 철학 아래 운용 스타일별로 차별화를 꾀하기 위한 조치였다.

국내 가치투자 영역을 세분화하는 한편 해외로 투자영역도 넓혔다.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 국가에 대한 스터디 뿐만 아니라 수년간의 준비로 해외기업에 대한 데이터도 오랜기간 축적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배당주 등 인컴자산에 주로 투자하는 한국밸류글로벌리서치배당인컴증권자투자신탁(주식)을 설정했다.

또 성장가치에 주목하며 최근 증시 트렌드에 가치투자를 접목하려는 시도도 멈추지 않았다. 특히 4차산업 혁명의 진전과 함께 영향력이 확대되는 플랫폼 기업과 콘텐츠, 모바일 게임 기업 등 새로운 아이템으로 시장수요를 창출하는 기업 발굴에 주력했다. 가치투자 기본원칙과 신념을 유지하면서 성장가치를 새로운 영역으로 개척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같은 시도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이 대표가 지난해 CIO 자리를 내려놨고 최근 사의를 표명하면서 당분간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됐다. 가치투자의 외연 확장이라는 숙원사업을 채 마무리 짓기 전에 내린 결정이라 업계에서도 아쉬움 섞인 반응들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가치투자 1세대로서 오랜기간 업계를 이끌어 온 그가 사의를 표명한 건 가치투자의 현주소와 무관치 않다"며 "그나마 국내 가치투자를 끊임없이 진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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