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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건설을 움직이는 사람들]김상열 회장, 시평 10위권 반열 주역…빅딜 후대 과제①우직함으로 주택사업 승부…시장한계 일찍 체감, M&A·재무통 중용

신민규 기자공개 2021-02-24 09:59:58

[편집자주]

호반건설은 전남 보성 출신의 김상열 회장이 1989년 설립했다. 지방 건설사로 시작했지만 30여년이 채 안돼 대형 건설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건설시장 한계를 일찍 체감하고 뛰어든 인수합병(M&A) 시장에선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올해 김 회장이 경영 후선으로 물러나고 오너일가 2세를 비롯한 전문경영인이 수장으로 올랐다. 더벨이 신구교체가 이뤄지는 호반건설 주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이 기사는 2021년 02월 18일 10:3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1961년 7월, 소띠 해에 태어났다. 20대 청년이 호남에 세운 조그마한 건설사가 전국구로 클 수 있었던 데에는 소처럼 우직한 그의 성실함 덕이 컸다.

세간의 이미지는 주택사업 한우물만 파는 모습과 다소 다르다. 50대 후반들어 대형 인수합병(M&A)에 집중하면서 야심가로 그려지기 충분했다.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을 롤모델로 삼고 개척정신을 언급할 정도로 사업확장에 관심이 남달랐다.

◇시평 77위→49위→24위→10위, 자체사업 통달

김상열 회장(사진)은 전남 보성 출신의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고등학교를 6년만에 졸업할 정도로 가난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조선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중소 건설사에 몸담았다. 1989년 되던 해인 28세 때 직원 5명으로 처음 회사를 차렸다.

회사 이름은 호수 '호(湖)'에, 반석 '반(磐)'자를 따서 '호반'이라 지었다. 첫 분양지가 물가에 있는 것을 보고 이름을 떠올렸다는 얘기가 있다. 첫 분양 사업은 광주 삼각동 148가구로 변두리 지역이었지만 시내 학교들이 이전한 덕에 성공을 거뒀다.

우직하게 실적을 쌓아 올린 시기였다. 주택사업은 시행과 시공을 모두 수행하는 자체사업 형태가 주류였다. 부지를 사들여 나선 분양에 성공을 거뒀다. 외환위기에 헐값에 나온 땅들이 광주를 벗어나 전국구로 클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2000년대에도 택지지구 땅을 사들여 개발하는 방식으로 성공했다.

시행사업은 단순 수주보다 리스크가 높다. 대신 수익성이 높고 사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시장이 살얼음판을 겪는 와중에도 살아남으면서 김 회장의 리스크 관리법은 업계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무차입 경영과 '90% 분양 원칙(분양률 90% 달성 후 신규분양에 나서는 것)'이다. 2010년대 내내 고수했던 원칙은 김 회장의 보수적인 성격과 완벽주의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사업진행 단계와 자금상황이 충분히 안정적일 때 신규사업에 나서는 전략으로 위기에 살아남았다. 시장상황이 좋더라도 프로젝트 하나로 회사가 망가질 수 있는 건설업계 생리를 이해하고 어디서 닥칠지 모를 리스크를 차제에 대비한 셈이다.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주택사업에서는 도가 텄음을 한눈에 알수 있다. 2009년만 해도 호반건설의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70위권 밖이었다. 2년 후 50위권내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부터 매년 순위가 급상승해 2013년 24위, 2014년 15위로 올랐다. 2019년 10위로 자리매김하면서 대형 건설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난해 12위로 두계단 밀렸다.


◇은둔의 경영자, 50대 M&A 집중 '전면 등장'

보수적인 경영방식에 비춰볼 때 50대 후반의 집중적인 사업확장 시도는 상당히 대조적인 부분이다. 김 회장은 55세 이후 금호산업, SK증권, 대우건설 등 굵직한 인수전에 차례로 뛰어들었다. 이전까지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그가 전면에 나서면서 시장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금호산업 인수전 참여 당시인 2015년 김 회장은 "개척정신이 투철한 정주영 회장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며 "금호산업 주식차익 중 200억원은 문화재단에 기부해 좋은 일을 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포부를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입찰가격이 채권단 눈높이에 맞지 않아 유찰됐지만 이후에도 조단위 딜에는 계속 나섰다. 김 회장은 매년 M&A 시장에 이름을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기존 업종과 일관성이 없는 인수 시도는 세간에서 무리한 도전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금호산업을 통해서는 계열에 있는 아시아나항공에 눈독을 들였고, 대우건설의 경우 대형 건설사 브랜드 가치를 매력적으로 느낀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SK증권은 접점을 찾기 애매했다.

하지만 건설판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김 회장 입장에선 앞날을 놓고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시장 한계를 일찌감치 체감했을 수 있다. 공공택지가 동난 상황에서 주택사업으로 예전같은 성장성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도 했다.

추가적으로 확장 가능한 부분이 재개발이나 도시정비사업인데 어떤 방식으로든 '체급'을 한단계 올리지 않고선 어려운 일이었다. 최근 건설업계가 신사업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점을 보면 김 회장은 몇수 앞을 미리 내다본 셈이다.

결과적으로 빅딜 인수는 실패로 돌아갔다. 실제로 김 회장이 인수한 곳은 울트라건설, 퍼시픽랜드, 리솜리조트, 대아청과, 삼성금거래소, 골프장 등으로 빅딜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 자체로 호반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이다.

김 회장은 빅딜 인수를 후대 과제로 넘겼다. 주요 이슈 때마다 등장과 퇴장을 반복했지만 그가 경영 전면에 재등장할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이번 호반건설 대표이사 직함을 내려놓은 것은 시장에서 세대교체로 해석되고 있다. 그룹 신사업이나 M&A 최종 의사결정에만 참여할 예정이다. 올해 김 회장의 나이는 59세다.

◇재무통 중용, 퇴진 때도 계열사 수장 배치

김 회장은 재무통 인사에 상당한 힘을 실었다. 그가 진두지휘했던 시절 재무출신을 두루 중용했고 물러나면서도 각 계열사마다 재무출신을 수장으로 앉혔다.

옛 외환은행 출신인 전중규 전 총괄부회장을 비롯해 최승남 부회장이 김 회장의 재무통 최측근으로 구분된다. 호반건설의 주요 M&A 딜을 보좌했다. 송종민 사장도 재무 출신으로 호반건설에서 CFO 총괄 역할을 맡았다.

올해 인사에선 김 회장은 각 계열사마다 호반건설에서 그룹 재무분야를 진두지휘하던 인물을 수장으로 배치했다. 최승남 부회장(호반호텔앤리조트), 송종민 사장(호반프라퍼티)이 그 예다.

호반건설 건설부문장인 김양기 부사장도 대우건설 재무 출신이다. 호반산업의 경영총괄을 맡은 이찬열 전무도 SK그룹 계열 재무·관리 출신으로 알려졌다. 삼성금거래소의 이우규 부사장도 포스코건설 재무 출신이다.

김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와중에도 회사 전반의 재무를 얼마나 강조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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