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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 토종 패션기업]산업화 조연 '메리야스', 파고에 시달리다①74년 역사 '향토 브랜드' 명성회복 안간힘, '오너경영' 흥망성쇠

김선호 기자공개 2021-05-27 08: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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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메리야스와 빨간 내복은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 상품들이다. 국내 패션산업의 근간이자 토종업체들이 지금까지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옛 명성을 잃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산업화의 역군으로 역사의 굴곡을 지나 온 국내 패션업체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들춰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5월 25일 10: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1950년대 한국전쟁을 겪으며 국내 경제는 피폐해지고 생필품 수요가 급증했다. 이 가운데 메리야스로 대표되는 '내의산업'이 태동했다. 양말이나 의류를 손으로 짜던 데어서 벗어나 편직 기계 등이 도입되면서 경제의 한 주축으로 떠올랐다.

사실상 메리야스는 스페인어로 양말을 의미하는 '메이아스(meias)'에서 유래된 단어로 알려졌다. 시대를 거치며 발음하기 편한 메리야스로 불렸으며 입는 사람에 따라 크기가 늘고 준다는 뜻에서 출발해 양말부터 내의 또는 속옷을 지칭하는 말로 의미가 확대됐다.

1970년대까지 백양, 쌍방울, 독립문, 태창, 태복 등이 5대 백색 속옷 브랜드로 자리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백양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지금의 BYC다. 내의사업을 고민하던 한영대 BYC 회장이 작은 양말 편직기를 개조해 국내 최초 메리야스 편직기를 완성해냈다.

◇BYC·쌍방울·독립문만 남았다

국내를 대표하는 내의 생산업체 BYC와 쌍방울은 본래 양말에서부터 시작했다. BYC가 양말 제조 생산 설비를 도입했다면 쌍방울은 양말 도매사업인 형제상회에서부터 태동됐다. 쌍방울은 충청권과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양말에 이은 메리야스 도매업으로 점차 규모를 키워나갔다.

1958년 메리야스업계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치며 1107곳에서 726곳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시기를 거치며 창업주 이봉녕 고(故) 쌍방울 회장은 1962년 드디어 전북 옛 동이리역 부근 인화동에 660㎡(200평) 규모의 공장을 마련하고 삼남메리야스공업을 출범시켰다.

이들보다 앞서 설립된 곳이 독립문이다. 1947년 대성섬유공업사로 시작해 1961년 6월 평안섬유공업으로 법인 형태를 갖췄다. 독립문의 전신인 대성섬유공업사의 설립연도부터 시기를 고려하면 국내 내의산업은 현재까지 74년이라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내의를 생산하고 있는 과거 노동자들의 모습(사진제공:BYC)>

내의산업은 의식주(衣食住) 중 의를 담당하며 경제 성장의 한 축을 맡았다. 누구나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의류를 생산하면서 실생활 깊은 곳까지 스며들며 근현대 역사의 한 장면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

하얀 메리야스, 통풍이 뛰어난 모시메리,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빨간 내복 등은 국내 자체 기술과 노동이 집약된 내의류 대표 제품들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힘든 시기를 거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BYC, 쌍방울, 독립문 등이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2000년대 해외 상품 밀물, 노후 브랜드 다각화 모색

2000년대 해외 브랜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론칭되면서 위기를 맞이했다. 메리야스를 찾는 이들은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노후화된 국내 브랜드는 설 자리를 잃어갔다. 그동안 게스, 캘빈클라인, 리바이스 등의 해외 속옷 브랜드는 빠르게 국내 시장의 점유율을 높여나갔다.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 속에 주요 기업들은 단순한 내의 생산 제조에서 브랜드 업체로 전환해나갔다. BYC, 쌍방울, 독립문 등이 본격적인 패션 업체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는 동안 세정과 신원이라는 국내 중소형 강호들도 재도약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자료출처: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세정은 1974년 설립된 동춘섬유공업사로 시작해 1991년 법인 전환을 이뤄낸 후 세정21, 세정과미래 등의 자회사를 설립하면서 브랜드를 다각화했다. 2000년대부터 주력 브랜드 인디안에 이어 올리비아로렌, 트레몰로 등을 론칭했다.

1973년 설립된 신원은 1990년 베스띠벨라와 씨를 론칭한 이후 인도네시아, 중국, 과테말라 등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면서 제조와 생산 시설 기반을 갖춰나갔다. 2017년에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영캐주얼 브랜드 ‘마크엠’을 론칭하며 재도약을 위해 나섰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신토불이 패션기업'들은 아직까지 뚜렷한 실적 전환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BYC의 ‘BYC’, 쌍방울의 ‘트라이’, 독립문의 ‘P.A.T’, 신원의 ‘베스띠벨리’, 세정의 ‘인디안’ 등이 소비 트렌드에 발 맞춰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대주주가 변경되거나 오너 2세 체제로 전환되는 동안 낡은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정체돼 있는 양상이다. 일부는 오너일가의 회삿돈 횡령으로 리스크가 발생하기도 하고 향토기업이라는 명성과 달리 외국인 오너 3세가 지배 정점에 올라서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메리야스 사업을 기반으로 성장하며 국민 기업으로 알려진 토종 업체들이 패션 브랜드로 전환하고자 했지만 최근 실적은 기대를 밑돌고 있다”며 “그 중 쌍방울을 품에 안은 광림이 남영비비안을 인수하는 등 재건에 나섰다는 점이 눈에 띄는 변화”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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