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7월 21일 08:1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성공하면 집념이고 실패하면 집착이라는 말이 있다. 결과론의 함정을 꼬집는 말이다. 어렵지 않게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반도체 사업을 향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지는 집념이고 그룹 재건을 향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의지는 집착으로 평가받는다.최태원 회장이 최근 오너경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가족경영에 대한 지적에 통감하지만 전문경영인 체제는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 무엇이 정답인지는 재계의 오랜 고민이다. 최 회장은 오너경영의 장점으로 과감한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도시바메모리(현 키옥시아)를 사례로 들었다.
굳이 키옥시아가 아니더라도 SK그룹은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한 만큼 자랑할 만한 사례가 많다. 1980년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등 SK그룹의 기본 골격부터가 M&A를 통해 만들어졌다. SK하이닉스는 그 정수(精髓)로 꼽힌다. 최 회장이 민감한 질문을 피하지 않고 대답한 배경에도 그동안 써온 성공신화에 대한 자신감이 자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오너경영의 가장 큰 리스크가 바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는 사실이다. 실제 그리 길지 않은 국내 기업의 역사에서도 ‘내가 책임진다’는 말 한마디가 불러온 패착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매각을 앞두고 있는 항공사의 오너였던 전 회장이다. 한때 재계 8위 그룹의 총수였던 그는 항공사를 되찾은 지 3년 반 만에 다시 매각을 결정했다. 그의 ‘집념’이 ‘집착’으로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도 고작 3년 반이었다. 상처는 오너 개인에게만 남지 않았다. 개인의 욕심 탓에 치러야 했던 값비싼 수업료는 대부분 임직원들이 내야 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인텔의 낸드 사업부 인수를 결정하며 다시 한 번 승부수를 던졌다. 무려 국내 M&A 역사상 최고인 10조3000억원 규모다. SK하이닉스 때와 마찬가지로 기대와 우려가 함께 쏟아졌다.
“나의 ‘애니멀 스피릿’을 믿어달라.” 최 회장이 SK하이닉스 인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다. 애니멀 스피릿(동물적 감각)은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기업가의 직감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애니멀 스피릿이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봤다.
시대가 달라졌다. 애니멀 스피릿만 믿기에는 산업이 너무 고도화됐다. 다행인 건 최 회장에게 애니멀 스피릿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SK그룹이 M&A 무패 행진을 이어갈 수 있던 배경으로 PMI(인수 후 통합)도 빼놓을 수 없다. SK그룹은 인수한 기업들을 SK그룹에 잘 녹여내는 성공적 PMI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 개인이 아닌 SK그룹 내 수많은 경영진들의 전략적이고 치밀한 접근이 있었다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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