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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의 '뜨거운' 안녕 [thebell note]

유수진 기자공개 2021-12-31 07:28:02

이 기사는 2021년 12월 30일 08:03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안녕'이란 단어는 특별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만나거나 헤어질 때 모두 쓸 수 있다. 고작 이음절짜리 인사말 속에 만남의 반가움과 헤어짐의 아쉬움이 모두 담겼다. '편안할 안(安)'에 '편안할 녕(寧)'이 더해져 상대가 무탈했으면 하는 바람도 녹아있다. 시인 박준은 '우리는 안녕'이란 책에서 '안녕은 마음으로 주고 마음으로 받는 말'이라고 했다.

포스코가 29일 포항제철소에서 1고로 종풍식을 가졌다. 종풍(終風)이란 수명이 다한 고로의 불을 끄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최초·최장수 고로인 1고로는 철강 역사의 산실이자 경제발전의 초석이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동안 쇳물 5520만톤을 쏟아내며 조선과 자동차, 가전 등 국내 제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뒷받침했다.

1고로가 처음 쇳물을 생산한 건 1973년 6월9일이다. 이날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직원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자력으로 철을 생산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경쟁력이다. 한국경제의 체질이 경공업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바뀌었고 단기간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내부에서 섭씨 10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뎌야 하는 고로는 통상 15년 이상 수명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단다. 포스코는 두 차례의 개수공사를 통해 1고로의 가동 연한을 늘려왔다. 역사적 가치와 상징성은 물론 여전히 쇳물 생산 기능에 문제가 없다는 걸 고려한 조치다.

그러다 이번에 종풍을 결정했다. 첫 출선 이후 48년 6개월만이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1호 용광로'의 은퇴는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탄소중립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최신형 고로보다 생산성과 조업 안정성 등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유독 많다는 점도 고려됐다. 1고로의 빈자리는 저탄소 전기로가 채운다.

포스코는 국내 최대 탄소배출 기업이다. 철강업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사업장 안팎에서의 자체적인 감축 뿐 아니라 밸류체인 전반을 고려한 사회적 감축도 함께 추진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그룹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최정우 회장에게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시기에 대해 물었다. 최 회장은 "2028년부터 데모플랜트를 거쳐 2040년 정도엔 본격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수소환원제철은 철광석의 환원제로 석탄 대신 수소를 써 이산화탄소 발생 없이 쇳물을 제조하는 공법이다. 포스코의 시도가 세계 최초다.

1고로의 퇴장은 석탄 기반이었던 철강산업 패러다임이 친환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50년 가까이 한국경제의 밑거름이 돼 준 용광로의 노고를 잊지 말되 새 시대의 주인공을 맞을 준비도 게을리 해선 안된다. 여러모로 뜨거운 안녕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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