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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공공기관 재편 논란]수은-무보 업무영역 갈등 8년만 재점화대외채무보증 두고 '밥그릇' 다툼 반복…2013년 이어 기능조정 논의로 이어지나

김규희 기자공개 2022-02-10 07:57:30

[편집자주]

대통령선거를 치를 때마다 금융공공기관은 곤혹스런 상황을 맞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정부조직 개편이 이뤄지고 산하 기관에도 변화가 따른다. 기능에 따른 분리, 통합 등 조직의 명운이 결정되기도 한다. 더벨은 과거 금융공공기관 재편 사례를 살펴보고 이번 대선 과정에서 논의될 사안을 짚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2월 09일 16: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수출입은행(수은)과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는 대외채무보증 업무를 두고 지난해 말부터 갈등을 빚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총액 제한 비율을 확대하려하자 무보 노조가 “업무 영역 침범”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두 기관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은의 대외채무보증은 무보의 중장기 수출보험과 기능이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 세금 낭비가 심각하는 비판이 꾸준히 나왔다. 과거 감사원이 기능 재조정을 요구하는 등 교통정리에 나섰지만 여전히 영역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두 기관의 갈등이 8년만에 재점화될 조짐이다.

◇ 수은 대외채무보증 규제 완화하자 무보측 “영역 침범”

수은과 무보의 갈등은 지난해 12월 있었던 대외경제장관회의 이후 불거졌다. 기획재정부는 회의에서 수출입은행의 대외채무보증 규모를 확대하기로 정했다. 해외건설 수주동향 등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해외 수주액이 2020년 351억달러에서 지난해 300억달러 안팎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자 수주지원 보완방안으로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제한을 완화하기로 한 것이다.

대외채무보증은 외국에서 국내 물품을 수입하기 위해 국내외 금융기관에서 구매대금을 대출받을 때 지급 보증해주는 제도다. 거래 상대방의 파산 등 이유로 수출대금을 못받거나 수출입금융을 제공한 금융기관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한 경우 이를 보상해준다.

수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외채무보증 총액 제한 비율을 50%로 늘리고 실적 기준을 직전 3개년 평균으로 바꾸기로 했다. 현 시행령은 수은의 보증총액을 무보 실적과 연동해 제한하고 있다. 수은은 무보의 당해 연도 보험인수 금액의 35%만 지급할 수 있다. 또 그동안 수은이 대출해준 금액이 총 지원액의 50%를 초과할 경우에만 보증을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을 앞으로는 대출 없이도 보증을 제공할 수 있도록 개정하기로 했다.

기재부는 국내 기업이 수출금융 제약으로 해외수주가 무산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이같은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재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타바메시 화력발전소, 콜롬비아 보고타 메트로 1호선, 베트남 북남 고속도로, 필리핀 태양광 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 등 최소 4년간 4건 이상이 보증지원 미비로 수주가 무산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해당 사업들은 121억달러(약 14조3591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무보는 '업무 영역 침범'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무보 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확대 움직임은 업무중복 및 경쟁 방지 취지에 위배된다”며 “전 세계에서는 한 국가가 2개의 수출신용기관(ECA)을 운영하는 경우 기관 간 경쟁 심화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우려해 1개 기관이 대출과 보증을 동시에 취급하는 것이 원칙이고 보험보증 업무는 무보가 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8년 수은과 기재부가 추진했다가 무산된 해외프로젝트 수주 지원 및 업무협약 체결은 환경문제로 사업이 중단됐거나 사업성 부족으로 기업 스스로 철수를 결정한 것”이라며 “수은이 자신들의 업무 실패를 감추기 위해 허위 정보까지 동원했다”고 덧붙였다.

수은은 대외채무보증 확대는 어디까지나 국내 수출기업 활성화를 위한 조치이지 업무 영역 침범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 이종통화 취급으로 인한 사각지대 해소 등 ‘그레이 에어리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은은 무보 노조가 제기한 감사 청구에 따라 감사원으로부터 지난달 사전 감사를 받았다. 감사원은 방문 조사 등을 토대로 이달 중 본감사 진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 8년 만에 반복된 대외채무보증 ‘영역 갈등’

두 기관 간 업무 영역 다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무보는 지난 1992년 수출입은행으로부터 분리 독립했다. 정부는 무역보험이 국제적으로 용인되는 대표적인 수출진흥 정책수단인 만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수은에서 무보를 분리시키고 각각 대출과 보증 업무로 역할을 분담 했다.

하지만 수은이 2008년 대외채무보증을 실시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해외 사업을 두고 기관끼리 지원 실적 경쟁이 벌어졌고 불필요하게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감사원이 나서 수은의 영업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교통정리 했지만 갈등은 계속됐다.

수은과 무보는 지난 2013년 금융위원회 ‘정책금융기관 역할 재정립 태스크포스(TF)’에서 크게 맞붙었다. 당시 기능 중복으로 인한 비효율이 크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을 개편하려 했다.

지난 2012년 수은이 대외채무보증 분야에서 1조1827억원의 실적을 내자 수은·무보 통합 논의가 점화됐다. 같은 기간 무보는 9조9413억원의 지원 실적을 거뒀다. 대외채무보증, 중장기 수출보험의 비슷한 상품으로 불필요한 경쟁을 벌이자 TF는 두 기관의 통합을 논의했다.

수은이 과거에도 보증·보험 업무를 맡았던 바 있어 통합하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가기도 했으나 TF는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문제 등을 이유로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수은이 보증·보험 업무를 전담하게 되면 규모가 큰 해외 프로젝트 특성상 BIS비율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에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지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수출 보험 지원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에 힘이 실렸다.

금융권 관계자는 “ECA인 두 기관이 일부 업무가 겹쳐 과거부터 계속 갈등을 겪어왔다”며 “결국 주목해야할 건 수출기업이다. ‘밥그릇 싸움’에 치중할 게 아니라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금융지원 방안 마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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