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을 움직이는 사람들]오너 3대와 손발 맞춘 권오갑 HD현대 회장①GRC 완공 계기로 ‘기술중심’ 전환 시작… 정기선 사장 체제 마지막 기반 닦기
강용규 기자공개 2022-06-22 07:40:34
[편집자주]
현대중공업그룹은 격변기를 지나고 있다. 바이오와 선박기자재 등 신사업이 추진되는 한편 건설기계부문 통합과 에너지부문의 친환경사업 확대 등 기존 사업군의 변화도 진행 중이다. 정기선 사장 시대를 끌고 갈 새 인물들뿐만 아니라 권오갑 회장 시대를 함께 했던 기존 인물들도 아직 역할이 남아 있다. 더벨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조명한다.
이 기사는 2022년 06월 17일 09: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권오갑 HD현대 대표이사 회장은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정주영 창업주와 오너 2세이자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을 모두 보좌했다. 이제는 3세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사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까지 준비하고 있다. 승계 준비의 1막인 지주사체제 전환과 2막인 중간지주사체제 확립은 이미 마무리했다.생산 중심이 아닌 기술 중심의 현대중공업을 넘겨주기 위한 준비가 마지막 단계로 여겨진다. 올해 11월이면 그룹 지주사 HD현대를 포함해 17개 주요 계열사가 경기도 판교의 GRC(글로벌 R&D 센터)에 입주를 시작한다. 이와 함께 정기선 사장이 물려받게 될 ‘기술 중심 현대중공업’이 출발선에 선다.
◇ 권오갑 회장, 현대중공업그룹의 상징적 인물
권 회장은 현대중공업그룹을 현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951년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나 효성고등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했다.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44년의 재직 기간에 평사원으로 시작해 그룹 경영의 정점인 회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정주영 창업주에서 정기선 사장에 이르기까지 그룹의 오너 3대와 모두 손발을 맞췄다.
특히 오너 2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의 관계가 잘 알려져 있다. 권 회장은 기업인 정몽준과 축구행정가 정몽준을 모두 보좌했다. 현재도 현대중공업그룹 회장과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를 겸직하고 있다. 때문에 정 이사장의 의중을 가장 잘 읽는 ‘복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권 회장은 정 이사장이 2002년 현대중공업 경영에서 손을 뗀 뒤에도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 소장을 지내며 정 이사장의 의중을 따라 경영상의 난제를 여럿 해결해왔다. 현대중공업이 2010년 인수한 현대오일뱅크의 대표이사에 올라 인수 뒤 통합 작업을 이끌었고 2014년에는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로 옮겨 조선업 불황에 따른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을 완수했다.
어려운 경영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권 회장을 향한 정 이사장의 신임도 깊어져 간 것으로 보인다. 정 이사장은 아들 정기선 사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준비작업까지 권 회장에 맡겼다.
정기선 사장은 올해부터 권 회장과 함께 그룹 지주사 HD현대의 대표이사직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직급이 아닌 직책으로만 보면 그룹에서 가장 높은 자리다. 그룹 경영전략의 수립 등 ‘실권’도 잡아가고 있다. 앞서 1월 CES2022에서 ‘미래 설계자(퓨처 빌더)’의 비전을 들고 자율운항선박, 로봇, 친환경에너지, 바이오 등 기술 중심의 산업을 그룹의 성장 방향성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정 사장이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는 사이 권 회장은 그동안 겸임해 오던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제뉴인 등 계열사의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았다. 2022년 6월 기준으로 권 회장의 직책은 HD현대 대표이사뿐이다. 한국조선해양에서는 미등기임원으로 회장 직함만 두고 있다.
내년 3월이면 권 회장의 HD현대 대표이사 임기도 끝난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내년 권 회장의 HD현대 대표이사직 연임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사내에서 권 회장을 향한 평가는 다소 엇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지주사 체제로의 개편으로 사업회사의 이익을 지주사로 이전하는 지배구조를 만들었다는 비판과 급여 반납을 통해 조선업 불황기의 고통을 분담했던 책임감 있는 경영인이라는 평가가 함께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현대오일뱅크의 고도화율 개선을 통한 실적개선이나 현대중공업 경영난 시기의 구조조정 완수 등으로 보여준 경영능력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권 회장의 경영능력은 2021년 한국경영학회 주관의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으로 최종 입증됐다는 평가도 있다. 그는 최초의 전문경영인 헌액자다.
◇ 그룹 경영승계 준비와 지배구조 확립
권오갑 회장은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지내던 2017년 4사 인적분할(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현대로보틱스) 뒤 현대로보틱스(현 HD현대)를 그룹 지주사로 삼는 지배구조 개편을 실시했다.
이후 진행된 현대로보틱스의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통해 정몽준 이사장은 현대로보틱스 지분율을 10.15%에서 25.8%까지 확대했다. 이와 함께 정기선 사장도 현대로보틱스 지분 5.1%를 사들여 배당을 통한 승계자금 확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사체제 전환은 정 사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준비의 1막으로 여겨진다. 최대주주의 지주사 지배력 확보와 차기 오너의 지분승계를 위한 자금줄 확보가 동시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시 권 회장은 현대로보틱스 대표이사를 겸임하면서 일련의 작업을 직접 지휘했다.
2019년~2021년에는 그룹의 사업군을 △조선 △건설기계 △에너지 3대 축으로 재정립하는 지배구조 개편이 진행됐다. 이 작업을 통해 현재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체제가 완성된 만큼 승계 준비의 2막으로 보는 시선이 나온다.
먼저 2019년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을 통해 조선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이 출범했다. 애초 이 지배구조 개편작업은 조선업계 최대 라이벌인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한 준비였으나 결국 인수에는 실패하고 중간지주사 체제만이 남았다.
다만 2021년의 두산인프라코어(현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인수에는 성공했다. 이 인수와 함께 건설기계 중간지주사 현대제뉴인이 출범했다. 역시 권 회장이 두 중간지주사의 대표이사를 겸임하면서 출범 초기 안정화 작업을 도맡았다.
재계에서는 권 회장이 추진하는 GRC의 완공을 놓고 정 사장의 현대중공업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마지막 준비 작업이라고 보는 시선도 나온다. GRC를 통한 그룹 R&D 역량 강화는 눈앞의 실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중장기적 미래, 즉 정 사장 시대의 경영을 위한 준비라는 관점에서다.
◇ 연구개발 시너지를 통한 기술 중심으로의 체질개선
권오갑 회장은 2017년 처음으로 GRC 건설계획을 외부에 공개했다. 5000명의 연구인력이 근무할 수 있는 대형 건물 하나에 그룹의 R&D 조직을 결집시켜 R&D 역량을 강화하고 생산 중심 경영에서 기술 중심 경영으로 거듭나겠다는 지향점을 밝혔다.
이후 권 회장은 기자간담회나 신년사, 주주총회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GRC가 지닌 그룹 R&D 통합기지로서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하며 GRC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여 왔다. 앞서 5월에는 판교의 GRC 공사현장을 직접 찾아 현황을 점검하고 그 자리에서 사장단 회의를 열기도 했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GRC의 효용성을 놓고 “계열사별 R&D 조직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면 각 사의 R&D 협업이 용이해지는 시너지가 발생한다”며 “이 시너지를 통해 그룹이 마주한 현안들을 풀어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그룹이 최근 내놓은 5년 21조원의 투자계획에는 스마트조선소 구축과 건설기계 자동화·무인화 기술개발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는 현대로보틱스의 산업로봇 관련 기술이나 아비커스의 자율운항선박 노하우가 접목될 수 있다.
함께 투자계획에 포함된 친환경 R&D분야에서도 조선사업군의 수소 운송 밸류체인 구축에는 현대오일뱅크의 수소 관련 노하우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현대일렉트릭의 ESS사업은 현대에너지솔루션의 태양광사업과 연계성이 높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LNG운반선 1척당 건조가격의 5%를 화물창 기술의 로열티로 취하는 프랑스 GTT의 사례가 있듯이 현대중공업그룹이 영위하는 산업들은 갈수록 원천기술의 가치가 커지고 있다”며 “GRC는 이런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현대중공업그룹이 선도하기 위한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한미 오너가 분쟁]새 경영진 임종윤·종훈 형제의 일성 "네버 어게인"
- JB금융, 얼라인에 판정승…이사회 2석만 내주며 선방
- [Company Watch]'TGV 첫 양산' 필옵틱스, 글라스 패키지 시장 선점
- 폴라리스오피스, 한국 AI PC 얼라이언스 참여
- 이에이트, 생성형 AI 접목 '스마트 팩토리 솔루션' 공개
- 일반석서 주총 관람한 한채양 이마트 대표, ‘책임경영’ 의지 피력
- AI매틱스-한국교통안전공단, AI 기반 버스 사고 예방 MOU
- [한미 오너가 분쟁]'임종윤·종훈' 형제의 승리, OCI-한미 통합 결렬
- 휴온스 이사회 입성한 오너3세, 경영 참여는 'NO'
- 필옵틱스, 업계 첫 TGV 양산 장비 공급
강용규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 [보험사 GA 열전]1위 질주 한화생명금융, 계속되는 '공격 경영'
- [보험사 GA 열전]자회사형 GA,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
- [이사회 모니터/ABL생명]임기만료 이사 전원 재신임...매각 중 안정 방점
- [보험경영분석]'목표는 IPO' 캐롯손보, 기업가치 열쇠 '규모의 경제'
- [Policy Radar]기틀 잡히는 밸류업, 배당확대 기대 보험사는
- [금융 人사이드]악사손보 차기 대표 한스 브랑켄, 체질개선 지휘 과제
- 김철주 생보협회장 "본업 위기 돌파구는 연금·제3보험"
- [이사회 모니터/코리안리재보험]재무회계 전문성 강화, 법률 전문성 공백 최소화
- [이사회 모니터/롯데손해보험]성대규 사외이사, 당국 소통·전문성·매각 기여 '3박자' 카드
- '무늬만 디지털' 보험사여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