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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desk]컬리의 10주년 '리추얼'

정유현 산업3부 차장공개 2025-05-28 07:07:23

이 기사는 2025년 05월 27일 07: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리추얼(Ritual)'은 원래 종교나 전통에서 정해진 형식에 따라 반복되는 의식을 뜻한다. 최근에는 개인이나 조직이 반복적인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확장됐다. 기업이 매년 창립일을 기념하거나 10주년·20주년처럼 상징적인 연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현대적 리추얼 개념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새로운 CI를 발표하거나 비전을 선포하는 이벤트도 종종 있다. 유난스럽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 안엔 생존의 확인과 정체성 재정립이라는 기업의 내면적 의식이 담겨있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은 컬리도 조용하지만 내실있는 리추얼을 진행했다. 새로운 CF를 공개하면서 브랜드의 여정을 소비자와 함께 되짚고 '좋은 것'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다시금 전했다.

내부 구성원과의 리추얼도 잊지 않았다. 김슬아 대표는 5월 셋째 주 타운홀 미팅을 열고 10주년이라는 시간의 의미를 함께 돌아봤다. 타운홀 미팅은 정례 행사지만 이번에는 상징적 시점에 맞춰서 생존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됐다. 김 대표는 자생적으로 창업해 10년을 버텨온 과정과 2조원대 매출 기업이 된 여정을 담담하게 전달했다. 익숙한 형식에 의미를 더한 그야말로 컬리만의 리추얼 방식이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성장한 비슷한 연차 기업처럼 CEO가 전면에 나서서 축포를 터뜨리거나 공격적인 비전을 천명하지 않았다. 조촐하게 구성원들과 박수를 나눈 뒤 타운홀 미팅은 마무리됐다. 그동안 수고한 서로를 응원하며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업무에 복귀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의외였다. 외부의 시각, 특히 자본시장에서 컬리는 '숫자'로 평가받는다. 사업 확장 과정에서 다수의 투자자를 유치하면서 김 대표의 지분율이 낮아졌고 한 차례 기업공개(IPO)를 철회하면서 성장 엔진이 꺼진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10주년을 맞아 내부에 해명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나 김 대표는 본래의 방식을 지키는 방식으로 조용히 답했다.

숫자로 살펴보면 기업가치는 낮아졌지만 꾸준히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2024년 처음으로 연간 거래액(GMV)이 3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1분기에는 연결 기준 처음으로 분기 흑자도 실현했다. 단단하게 컬리만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것이다. 컬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운영 방식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혔고 실질적인 이익을 낼 수 방법에 대한 감각도 갖췄다.

의도 여부는 모르지만 10주년과 분기 흑자 전환이 맞물렸고 시장의 관심은 컬리의 '연간 흑자' 달성 여부로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컬리 내부에서는 연간 영업이익을 내는 것을 그렇게 큰 이슈로 여기지 않아 또 놀라웠다. 광고 캠페인을 시작하며 2분기에는 적자를 감수할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수익성에 영향을 받겠지만 고객 투자를 재개하면서 더 큰 도약을 위한 세 번째 챕터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컬리는 오늘도 수십만 개의 주문을 처리하고 제품을 배송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매일매일이 쌓이면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는 철학 아래 본업에 집중하며 첫 번째 전환점을 통과하고 있다. 20주년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는 지금 컬리는 숫자만으로 평가받는 초기의 시간을 넘겼다. 이제 자본시장도 컬리가 지켜온 철학과 가치에 주목하길 바란다. 본질에 집중한다면 숫자는 결국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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