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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 조이는 노란봉투·상법]노조활동 위장한 ‘노폭’…불법 근절 대응책도 담아야K-제조업 생산 특수성 반영, 불법 명확히 차단할 제도 보완 시급

고설봉 기자공개 2025-08-05 10:36:44

[편집자주]

산업계가 국회 통과가 유력한 ‘노란봉투법’과 ‘더 센 상법’에 시름하고 있다.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노조의 쟁의권을 확대하는 노란봉투법은 기업의 생산활동에 직접 영향을 준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확대하는 2차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독립경영을 위축시키는 요소다. 산업계는 경영활동 전반에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다. 논란의 두 법률 개정의 효과와 새 법률이 산업계 및 각 기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다.

이 기사는 2025년 08월 01일 16시05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재계와 산업계가 노란봉투법을 견제하는 것은 노동권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재계는 노란봉투법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한국의 제조업 특성상 원청과 하청 관계로 이뤄진 생산체계는 효율성과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됐다. 노란봉투법이 이 생산체계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국내 대표 산업군인 자동차와 조선, 반도체·전자, 기계장치, 철강, 배터리 등 제조업 기반 기업들에선 노동조합이 활발히 활동하며 임단협 등을 통해 회사와 협업해 생산체계 운영의 안정성을 담보한다. 이런 가운데 노란봉투법이 원청과 하청의 경계를 허물고 쟁의 대상을 무한정 넓히면 한국의 생산체계는 무너져 글로벌 수출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글로벌 호령하는 K-제조업…생산체계 떠받치는 하청시스템

“며칠째 계속되는 파업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B사 1공장 2라인 노동조합 하청지회에서 시작된 파업에 몇몇 다른 라인 하청지회까지 번졌다. 1공장 투입 인력의 5%가 주도한 파업은 며칠 뒤 결국 공장 전체 폐쇄까지 이어졌다. 본사 노무팀이 총출동해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강경한 입장에 출구는 없다. 불법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출동한 100여명의 경찰 인력도 할 수 있는게 없다. 이번에 B사 1공장 2라인 하청지회에서 파업에 나선 이유는 회사의 동남아 신공장 건설 반대였다.”

노조의 쟁의 대상이 무분별하게 넓어지면 앞으로 한국 산업계에선 쟁의가 끊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은 노조가 파업할 수 있는 전제가 되는 ‘노동쟁의’의 범위가 대폭 확대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사업장 통폐합, 해외 이전, 정리해고, 구조조정 등 기업의 경영활동 전반이 노사협상 및 쟁의 대상이다.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노란봉투법의 파급력이 큰 또 다른 이유는 국내 핵심 제조업의 생산체계 때문이다. 자동차와 조선, 반도체·전자, 기계장치, 철강, 배터리 등 국내를 대표하는 수출품의 생산체계는 하청구조를 띈다. 원청인 대기업이 도급관계의 인력전문회사와 계약을 맺고 하청 노동자를 제조현장에 투입해 생산을 하는 구조다.

대기업 중심의 국내 산업계의 특징은 생산시설 대형화다. 국내 대표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단일 공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HD현대중공업의 울산조선소는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이고 한화오션의 거제조선소도 이에 못지 않다. 포스코의 포항과 광양 제철소도 글로벌에서 체급으로 손에 꼽힌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SK하이닉스 이천공장 등은 글로벌 시장을 이끄는 반도체 생산시설이다.

생산시설이 크고 생산품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생산체계도 복잡하다. 이에 따라 생산체계 내 투입되는 노동의 종류와 강도도 다르다. 핵심 기술과 장비를 다루는 전문인력도 필요하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도 필요하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들은 생산체계 내 상황과 필요에 맞춰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 생산성을 높여 효율성을 갖추기 위해서다. 그래야 수출 경쟁력이 살아난다.

노란봉투법은 이러한 생산체계의 특수성을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임금, 복지, 휴게시간 등 근로조건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해서만 쟁의가 허용됐고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때만 파업이 가능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생산체계 내에선 파업 예측 가능성이 높았고 그에 맞춰 대응책을 마련해 분쟁 장기화를 방지해왔다. 그러나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엔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생산체계 안정화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의 생산시설의 경우 하청업체 수가 수천개에 다다르는 사업장도 있는데 개별 하청지회의 노동쟁의에 대한 교섭 의무를 원청이 다 진다면 일년 내내 쟁의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며 “그만큼 생산활동의 불활실성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건설업·중소기업 현실…불법에 대응하기 힘들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 이하 중견·중소기업과 건설현장이다. 대기업 사업장은 국가 보안 시설로 지정된 곳도 많고 생산체계에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이에 따라 노조의 쟁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도 해당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로 제한된다. 외부 하청업체 직원이나 제3의 세력이 파업에 가담할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다.

그러나 중견기업 이하 사업장에선 이따금 외부 세력이 노동쟁의에 참여해 파업이 정치화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목격된다. 특히 전국 단위 노조원들이 가세해 파업의 규모를 키우고 이에 따라 사업장 전체가 피해를 보는 사례도 많다. 이는 엄연한 불법이지만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이러한 불법을 사전에 차단할 길이 막막해 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다른 문제의 현장은 건설업이다. 최근 몇 년 우리사회엔 ‘노조’와 ‘조폭’의 합성어 ‘노폭’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특히 건설업에서 이러한 신조가 많이 쓰였다. 일부에서 노조활동을 빙자한 폭력행위로 이권을 얻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이들을 빗댔다. 사례를 전체 노동계로 확대할 순 없지만 여전히 영세 사업장에선 노폭에 사업장 전체가 휘둘리는 경우도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수시로 바뀌는 만큼 건설노조는 다른 제조업 노조와 비교해 응집력이나 결속력이 높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지역을 단위로 건설노조가 생겨 지역을 돌며 각 현장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렇다보니 특정 사업장에 국한되지 않고 지부를 결성한 노동조합 및 조합원들이 관내 및 인접 지역을 넘나들며 쟁의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건설노조가 난립하고 실제 해당 현장과 관련 없는 제3의 노조까지 등장해 쟁의를 벌이는 사례도 있다.

또 쟁의의 대상과 내용도 정당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특히 건설장비를 대여해 사용하는 건설현자을은 노조의 표적이다. 해당 노조에 소속된 장비업체에 마치 할당하듯 장비를 대여해 사용하지 않으면 쟁의가 벌어지는 경우도 비밀비재하다는 것이 건설업계에선 공공연한 사실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실제 해당 현장에서 일을 하지 않거나, 과거 했지만 근래에는 출근하지 않는 사람까지 노조원이라고 쟁의를 벌이는 일도 있다”며 “A 노동조합의 장비를 쓰면 B 노동조합에서 동일 비용만큼 자기네 소속 노조원의 장비를 쓰라고 요구하는데 이에 응하지 않으면 쟁의하겠다고 협박하는 일은 항상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불법에 대한 규정과 이를 제재할 방식도 문제”라며 “쟁의의 명분이 없고 그 절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에도 현재도 사측이 쓸수 있는 제재 수단이 많지 않은데 노란봉투법 이후에는 더 무력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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