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 EB 판결문 분석]자사주 '자산설' 도마 위…관건은 기존 주주 '피해 규모'②재무적 관점에서 자사주 '이미 없는 주식' 지적…법원은 자산설 재확인
이돈섭 기자공개 2025-11-12 08:12:06
[편집자주]
지난 7월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한 상법 개정안은 자본시장 내 뜨거운 화두였다. 해당 개정안을 처음으로 적용한 트러스톤자산운용과 태광산업 간 소송은 많은 시장 관계자 눈길을 끌었다. 법원은 태광산업 손을 들어줬고 트러스톤운용은 항소했다. 법원의 1심 판결문에서 따져볼 내용은 다양하다. theBoard는 해당 판결문을 토대로 이번 판결이 남긴 쟁점들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5년 11월 10일 08: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사주는 자산일까. 자본시장 내 오랜기간 논쟁거리였던 이 문제가 태광산업 자사주 대상 EB 발행 가처분 소송 판단에서 다시 불거졌다. 그간 법원은 자사주를 자산으로 판단하고 기업들이 자사주를 외부에 넘기는 행위를 용납해왔다. 하지만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자사주를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시장에서 끊이지 않았고 이번 태광산업 자사주 대상 EB 발행 가처분 소송에서도 같은 잡음이 일어났다.결론적으로 이번 소송에서 법원은 그간 고수해온 자사주 성격을 재확인했다. 다만 자사주 성격에 대한 논쟁을 수면위로 다시 끌어 올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상법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태광산업 EB 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 판결문에서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한 EB는 성질상 신주가 발행되지 않는다'며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EB를 발행하는 경우 사채를 발행한 때 자사주를 처분한 것으로 보는데 상법뿐 아니라 자본시장법령 규정도 자사주 처분에 대해 경영상 목적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고 썼다.
이는 결국 자사주 대상 EB를 발행하는 데 경영상 목적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수천억원 규모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EB를 발행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대주주 이익을 지키기 위해 EB를 발행하는 것 아니냐는 트러스톤운용 주장을 법원이 일축했다. 트러스톤운용은 자사주 대상 EB 발행은 실질적으로 CB를 발행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발생하므로 신주 배당에 따르는 요건이 유추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상법과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상장법인이 신주를 배정하려면 회사 경영상 목적 달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이 신주를 발행하면 신규 자금이 유입돼 현금 보유량이 늘어나고 자산이 커지게 된다. 기존 주주 지분이 희석되고 의결권이 약화하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회사와 주주 등 기업 이해관계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 경영상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신주를 발행하라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사주는 얘기가 다르다. 회사가 기존에 발행한 주식을 스스로 사들인 후 다시 교환 대상으로 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상법과 자본시장법에서는 자사주 취득과 소각에 대해선 뚜렷한 요건을 적시하고 있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 취득과 소각은 재무 전략과 주가 부양에 활용할 수 있다"면서 "자사주 활용 요건이 엄격해지면 기업 입장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법원이 자사주 대상 EB 발행을 좁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재무 관점에서 자사주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주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하면 기존 주주들에게 현금이 이전돼 현금 보유량이 줄어든다. 자기자본이 감소하고 부채비율이 증가한다. 기존 주주 지분이 커지고 의결권도 강화된다. 현행법이 자사주에 의결권을 부여하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법원은 자사주를 자산으로 봤지만 시장은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제기된다.
송옥렬 서울대 교수는 "재무적으로 자사주는 자본 차감 항목으로 취득과 함께 사라졌다고 본다"며 "자사주를 대상으로 EB를 발행하는 건 결국 신주 발행 결과와 똑같기 때문에자사주 대상 EB 발행 요건은 신주 발행 요건과 다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태광산업도 재무제표에서 자사주를 자산이 아닌 자본 차감 항목으로 계상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자사주는 자산의 일부로 여기는 경향이 뚜렷했다. 과거 삼성물산이 발행주식 총수의 5.8%에 달하는 자사주를 우호 기업인 KCC 측에 넘김으로써 제일모직과의 합병 결의를 성사시킨 바 있다. 자사주를 자산으로 보지 않았다면 이뤄질 수 없는 딜이었다. 당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자사주를 외부 기업에 넘기면 주주평등 원칙이 훼손된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법원은 삼성 측 손을 들어줬다.
이후 시장에서는 기업이 기업 자금으로 사들인 자사주가 최대주주 경영권 방어를 위해 활용되는 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자사주를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는 행태가 기업가치 저평가 초래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취득이 기존 주주 의결권 상승으로 이어지는 점에 착안,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상법이 개정되고 국회를 중심으로 자사주를 취득하면 이를 원칙 소각케 하는 안이 논의되면서 시장 분위기가 점진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진단이다. 자사주 취득 후 소각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논의되면서 상당수 상장사들이 자사주 대상 EB 발행에 나섰고 태광산업도 그 일환으로 EB를 발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 이번 소를 맞닥뜨린 측면이 크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판결문에서 내비친 자사주에 대한 인식이 바뀌긴 쉽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원 판단을 통해 자사주 대상 EB 발행이 금지되려면 결국 대법원 판례가 뒤짚어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태광산업 건에 한해 보면 재판부 성향에 따라 일부 세부 판단에서 다른 의견이 나와 EB 발행 가처분 소송이 인용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소수주주의 위법행위유지(금지)청구권이 주주 이익보호를 위한 권리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부분이 거론된다. EB 발행으로 기존 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가처분 소송이 인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피해가 뚜렷하지 않으면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워 유사 소가 제기되긴 어려울 수 있다. 태광산업 자사주는 발행주식의 24.4%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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