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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desk]'중복상장'을 위한 변명

이승우 산업1부장공개 2025-05-07 08:07:01

이 기사는 2025년 05월 02일 07시1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주사 체제로 밀어 넣은 후 자회사들의 손발을 묶어 놓은 꼴입니다."

중복상장을 터부시하는 정부 당국자들의 언행에 대한 기업인의 노골적인 불만이다. 모 그룹 회장 발언이 기름을 부어 '중복상장 방지법'까지 꺼내드니 자본시장과 기업인들은 넋을 놓았다.

#삼성과 현대차 그룹이 위너인가

20여년 전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해 정부가 꺼내 놓은 게 지주사 체제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세제 혜택이라는 당근까지 줬다. LG와 SK 두산 포스코 등이 순차적으로 지주사 체제로 전환, 현재 기준 대기업집단 절반 이상이 지주사 체제다.

그 사이 혜택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금산분리와 지주사 부채비율 규제, 내부거래 제한 등 규제는 살아 있다. 당초 있던 규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에는 '중복상장 규제'가 새로운 근심거리가 됐다.

그래서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위너라고. 지배구조를 건드리지도 않았거니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SDS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 여러 계열사들이 자유롭게 상장사의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도 새로운 산업으로의 진입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업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기본이니 외부 자금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자본과 기업은 서로 견제해 가면서 공생한다. 정부가 건강한 이 생태계를 '지주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끊어 놓은 건 아닐까.

솔직히 새로운 사업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면 모 그룹 회장 말처럼 '투자를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기존 모회사 주식을 팔든지, 아니면 새로운 기업의 IPO에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 당장의 주가가 떨어진다고 해서 기업의 미래를 발목잡는 건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오락가락' 당국의 기준

기업인들의 또 다른 불만은 감독당국의 불분명하고 말을 바꾸는 태도다. LG에너지솔루션 IPO 전후를 물적분할 기업의 상장 가능 기간은 '분할 후 5년'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생겼다. 정부 당국자도 대충 이 정도 수준에서 투자자와 기업간 협의를 이끌어 냈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대기업 뿐 아니라 중견 이하 기업들도 이에 맞춰 상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갑자기 당국이 이를 번복, 준비하던 기업들은 당황스러울 뿐이다.

중복상장을 하려는 기업들의 이유와 성격도 모두 다르다. 구주주 엑시트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사업에 대한 자금 마련인지 단순한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다. 케이스별 심사보다는 여론에 밀려 '중복상장 불가'라는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누굴 위한 규제인가

진보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가 최근 상법개정을 놓고 사실상의 반대 입장을 밝혀 화제다. 국가경제를 위해 지금 무리하게 도입하는 건 안된다는 게 골자다. 주주들의 입장만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면 "기업들이 주주들의 현금 인출기가 되고 그 순간 우리나라는 끝"이라고 장 교수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소액주주만을 고려한 극단적인 방식을 우려한 것이다.

솔직히 중복상장을 하게 되면 모회사 주주들에게 피해가 가는 건 맞다. 그 주주들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그래서 정부도 기존 주주들에게 주식 우선매수권 내지는 풋옵션 가격 현실화 등 보완대책을 내놓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 주주들만이 우리 경제의 주체는 아니다. 또 다른 주주인 기업들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장 교수 말처럼 글로벌 경쟁 시대에 기업을 통한 국가경제도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경제 주체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복상장이 무조건 부도덕한 행위로만 낙인찍는 행동은 포퓰리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생각보다 우리 나라, 그리고 우리 기업들의 처한 상황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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