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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화장품기업들의 뒤늦은 '응답'

신수아 기자공개 2012-09-12 10:08:34

이 기사는 2012년 09월 12일 10: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2년 이화여자대학교 정문 앞, 3300원에 화장품을 판매하는 '미샤'가 등장했다. 몇 만원을 호가하던 파우더부터 값비싼 용기에 들어있는 스킨과 로션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미샤의 3300원짜리 팩트와 9900원의 영양크림에 환호했다. 밝고 깨끗한 외관에 'Tester'라고 부착된 수십가지의 체험 제품들을 맘껏 사용할 수 있는 내부는 신세계 그 자체였다.

'브랜드 샵'의 시대는 그렇게 시작됐다.

우라나라 화장품 메스 유통 채널(Mass Market)은 80년대 진입하면서 우후죽순 생겨난 '화장품 소매점'들로 시작됐다. 그 전까지 화장품 업계는 형형색색 화장품을 하나 가득 어깨에 짊어지고 집집 마다 방문하던 '방판 아줌마'가 유통의 90%를 책임지는 구조였다. 90년대 아모레퍼시픽을 필두로 화장품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등장하며, '화장품 전문점'은 전성기를 맞는다. 호객을 위해 업체들은 뼈를 깎는 가격 경쟁에 열을 올렸고 이는 브랜드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져 의도치 않게 고객들의 이탈을 가속시켰다.

90년 대 말 IMF위기로 소비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화장품 업계는 소비의 양극화가 시작됐다. 2000년 대 초반 고급라인을 고집하는 고소득층이 백화점이나 방판을 애용한 반면, 저렴한 라인을 지향한 저소득층은 할인점이나 홈쇼핑, 인터넷 등의 다양한 소비채널로 분산됐다.

유통 채널이 다각화되며 화장품 업계는 양분됐다. 자금 동원력이 양호한 상위권 기업들(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은 제품력과 브랜드 파워를 내세워 성장률이 둔화된 라인을 방어하며 대안 채널을 구축했다. 반면 2000년 대 초반까지도 중저가 라인의 방판이나 화장품 전문점을 고집하며, 브랜드 마케팅에 소홀했던 중견 업체(한국화장품, 나드리 등)들은 유통 채널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점차 뒤쳐지게 된다. 이 시기부터 상위권 업체의 선전에 필적한 상대로 '브랜드 샵'을 전면에 내세운 저가의 후발업체들이 떠오른다.

미(美)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10대와 남성에 이르기까지 화장품 시장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품질좋은 저가'를 표방한 브랜드 샵의 인기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충분한 실탄을 지녔던 상위권 업체들은 재빨리 '브랜드 샵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시장의 변화를 넋놓고 지켜 본 중견업체들은 빠르게 쇠락했다. 유통 채널 장약력이 떨어지며 매출은 급감했고, 2003년 이후 영업이익률은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계속된 실적 악화는 재무안정성 저하로 이어졌고, '투자력 부족-마케팅 부재-이미지 하락-실적 악화'라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이미 시류를 놓친 중견업체들은 '브랜드 샵'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후에야 뛰어들었다. 신성장동력을 찾기위해 OEM/ODM 분야로도 진출했지만, 브랜드 샵의 확대에 발맞춰 성장한 OEM/ODM 업계는 이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가 양분한 상황이었다.

트렌드를 읽지 못한 기업은 뒤쳐진다. 화장품 산업은 10년의 주기로 방판에서 전문점, 브랜드샵에 이르기까지 지배적 유통채널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도약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성장통'를 겪었다. 유통 채널의 트렌드를 읽지 못한 화장품 업체에게 성장통은 고통에 불과했다.

화장품 업계의 판도를 갈랐던 2002년. 시대의 요구에 묵묵부답이었던 중견 화장품 업체들의 뒤늦은 '응답'에 공허한 메아리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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