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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사이더

김현동 기자공개 2013-03-08 08:46:35

이 기사는 2013년 03월 08일 08: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달 25일 금융감독원은 보험회사의 지급여력(RBC)비율을 공개했다. RBC비율은 보험회사에 적용되는 자기자본 규제 제도로, 은행권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과 유사하다. 금감원은 2000년대 초부터 은행의 BIS비율을 분기 별로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험사의 RBC비율은 1999년 지급여력비율 제도 도입 이후 14년 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RBC비율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영업에 잘못 이용될 수 있다'는 이상한 이유에서였다.

RBC비율 공개를 주도한 사람은 허창언 보험감독국장이다. 허 국장은 한국은행 출신이지만, 1999년 통합 금감원 이후 계속 보험 업무를 맡아온 보험사 감독과 검사 분야의 베테랑이다. 보험감독원 출신의 생명보험·손해보험 검사팀장은 RBC비율 공개에 반대 입장이었다. 감독당국이 RBC비율을 공개하면, 영업 과정에서 RBC비율이 오용될 수 있다는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한 편에서는 RBC비율 검증에 대한 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회장 취임 후 야인 시절 신한은행에서 판매하는 펀드에 가입한 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가입한 펀드의 수익률은 형편없었고, 마이너스 수익률에 대해 은행으로부터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그 때 든 생각이 '은행은 금융상품 판매만 생각하지, 고객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구나' 였다고 한다.

한 회장이 취임 직후 그룹의 핵심 가치로 ' 따뜻한 금융'을 내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비올 때 우산을 제일 먼저 뺏는 신한금융의 이미지를 바꿔야 했다. 은행의 수익만을 생각해 무작정 판매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는 일침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따뜻한 금융'이 신한금융에 완전히 생소한 개념은 아니었다. '따뜻한 금융'은 신한은행 출범 당시의 행훈(行訓)에 포함돼 있던 잊혀진 메시지였다(당시 행훈은 '새롭게 알차게 따뜻하게'였다).

#허 국장이나 한 회장의 사례는 조직의 변화에서 소위 '인사이드 아웃사이더(inside outsider)'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조우 보우어(Joe Bower)는 자신의 책 'The CEO Within'에서 "인사이드 아웃사이더는 내부 출신이면서도 조직의 오랜 관습이나 이데올로기에 거리를 둘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거의 아웃사이더 같은 사람이다"라고 적고 있다. 내부 출신이기 때문에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렇지만 내부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인사이드 아웃사이더다.

허 국장은 10년 가까이 보험 감독 업무를 맡아왔지만, 보험회사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험사가 아니라 보험가입자와 시장 참가자 입장에서 RBC비율 공개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한 회장은 신한금융 내부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불린다. 회장으로 선임되기 전까지 3~4년을 야인으로 살았기에 '빚'이 없다는 뜻이다. 조직에 대한 이해도로 따지면 확실한 내부인이다. 1982년 신한은행 창립 멤버로 20년 가까이 신한은행에 몸 담았고, 신한생명 사장까지 역임했다. 그렇기에 정치권력과의 유착이라는 악습을 끊으면서도, '따뜻한 금융'을 통해 신한금융의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었다.

국내 금융권에서 허 국장이나 한 회장 같은 '인사이드 아웃사이더'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쟁자나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 때문이다. 금융회사 중에서 제대로 된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곳도 드물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잭 웰치가 말한 것처럼, CEO의 최대 과제는 '인사이드 아웃사이더'같은 후계자를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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