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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에 대한 '마녀사냥' [thebell note]

정호창 기자공개 2015-01-22 08:04:29

이 기사는 2015년 01월 21일 09: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오비맥주의 남한강 물 공짜 사용 논란이 뜨겁다. 일부 언론에서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로 날 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논란의 본질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비판이 과연 타당한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오비맥주 이천공장이 지난 1979년 이후 36년간 남한강 물을 끌어다 맥주 제조에 사용하면서 하천수 사용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오비맥주가 이득을 위해 국가하천인 남한강의 수자원을 무단 이용한 것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해당 하천에 대한 관할권을 갖고 있는 경기도와 여주시가 지난 36년간 단 한 번도 오비맥주에 하천수 이용료를 부과하거나 징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무지와 행정 실수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다.

경기도는 오비맥주의 남한강 물 사용료가 하천수 사용료 부과 대상이 아니라 댐 건설법상 댐용수 사용료 부과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댐 건설법에는 '댐 건설 이전에 하천수의 사용허가를 받아 물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는 면제 조항이 있다. 이를 법률 용어로 '기득수리권'이라 하는데, 오비맥주는 충주댐 건설(1985년) 이전인 1979년 하천수 사용허가를 받았기에 댐용수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번 논란을 촉발시킨 법 조항은 하천법 제37조다. 여기엔 '하천점용허가를 받은 자로부터 토지의 점용료, 그 밖의 하천사용료를 징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법 조문이 '징수한다'가 아닌 '징수할 수 있다'로 돼 있어 납세 의무에 대한 법리 해석에 다툼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관련 규정을 뒤늦게 인지한 여주시는 일단 지난해 12월 오비맥주에 처음으로 하천수 사용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지방세 소멸시효가 5년으로 돼 있어 오비맥주가 2009년 이전 사용한 하천수에 대해서는 사용료를 부과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자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게 된 건 오비맥주다. 오비맥주는 하루 아침에 나랏돈을 떼먹은 '파렴치한 기업'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오비맥주로서는 창사 이래 한 번도 부과받지 않아 납부 의무가 없었고, 그래서 당연히 인지하지도 못한 생소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으니 당혹스럽고 억울할 법한 일이다.

법조계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오랜 격언이 있다. 이는 영미법계 국가에서 통용되는 법 이론이자 중요한 판단 기준이기도 하다. 개인이나 기업 모두에게 구분없이 적용되며, 설사 그 대상이 국가라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번 사안에 적용하면 국가나 행정관청이 세금 부과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니 그 권리는 존중받지 못하고, 당연히 납세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엄밀히 따져보면 이번 논란에서 오비맥주는 지자체의 행정 착오 탓에 오명과 허물을 뒤집어 쓴 피해자에 가깝다. 안타까운 것은 사태의 원인을 제공하거나 의무를 방기한 주체가 아님에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됐다는 점이다. 현재 분위기를 봐서는 앞으로 상당 기간 기업 이미지 실추와 매출 하락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부정과 부조리에 대한 정당한 지적과 단죄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쓰지만 좋은 약'이다. 하지만 근거 없는 마녀사냥과 반기업 정서는 국가와 국민, 기업 어느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독약'일 뿐이다. 이제라도 여론의 냉정한 눈이 이번 사태의 본질을 바로 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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