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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은행의 잃어버린 10년 [thebell note]

이승우 기자공개 2015-03-19 08:50:56

이 기사는 2015년 03월 11일 08:1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C가 제일은행을 인수한 지 올해로 만 10년이다. 씨티에 이어 외국자본으로 국내은행이 넘어간다며 나라가 떠들썩했던 게 지난 2005년이다.

제일은행 인수와 더불어 SC는 국내 금융산업에 대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제일은행 인수 이듬해부터 LG카드와 LIG생명보험, 녹십자생명 등 굵직굵직한 기업 인수합병(M&A) 딜(Deal)에 명함을 내밀며 본격적인 덩치 키우기에 나섰다. 한국 금융시장에 뛰어드는 그 모습이 거침없었다.

본사에서는 두둑한 자금으로 한국 SC의 베팅을 뒷받침했다. 2006년 5700억원 규모의 SC제일은행 유상증자를 했고 2008년에는 지점 리모델링과 저축은행 인수 자금 등을 위해 1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한국 진출에 먼저 나섰던 씨티는 물론이고 국내 은행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랬던' SC가 철수설에 시달리며 존재감이 사라진 은행으로 전락했다. 이익은 줄어들고 직원들은 불안감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다. 투자 주체인 SC 스스로도 실패를 자인했다. 지난 2013년 SC그룹은 제일은행 인수 당시 18억달러로 평가했던 한국 SC은행의 영업권을 8년만에 8억달러로 낮췄다.

벌였던 사업은 정리 수순을 밟았다. 저축은행과 캐피탈이 매각됐고 주식 매매 업무에서 손을 떼면서 증권업도 사실상 정리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서 본사로 조 단위 배당을 송금하려던 계획이 알려지자 SC가 국내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루머가 구체적인 정황으로까지 확인되는 듯 싶었다.

기업금융과 자산관리(WM) 사업에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SC가 한국에서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이유를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현지화에 나서지 않았던 그룹 전략과 본사 문화를 수용하지 않으려 했던 직원들의 과오가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2011년 장기간의 노조 파업은 SC가 한국내 사업 안착에 실패한 주요 변곡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한국 금융 환경 그리고 노조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본사의 판단 착오도 성패를 가른데 한 몫 했을 것 같다.

최근 SC는 한국인 행장을 선임하면서 신발 끈을 다시 묶고 있다. 지점 규모를 줄여 비용을 아끼고, 찾아가는 은행 서비스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 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부에서는 현지인 행장 선임이 한국 철수를 위한 정지작업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지만 일본과 홍콩에서도 현지인 행장을 선임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SC의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게 맞다. 물론 글로벌 전략에 한국 철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아직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SC만의 경쟁력을 찾아보겠다는 시도로 해석하는 게 무리 없어 보인다.

제일은행을 인수할 당시 SC 전체 글로벌 자산에서 한국 비중이 25% 수준이었다고 한다. 인도와 아프리카 등 전세계 틈새 시장을 공략하던 SC가 그만큼 한국에 통큰 베팅을 한 셈이다. 하지만 그 비중이 최근 7~8% 수준으로 급락했으니 한국에서의 10년은 잃어버린 셈 쳐야할 것 같다.

그 사이 전세계 금융의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고성장 국가에 레버리지를 일으켜 큰 베팅을 하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과거 SC가 틈새 시장에서 보여줬던 조용하지만 내실있고, 독창적이지만 안정적인 사업 방식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되고 있다. SC가 그 경쟁력을 한국에서 끈질기게 실현해 나가기 바란다. 한국 SC은행의 운명을 가늠할 박종복 행장의 짐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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