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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인사 실험 '기대 반 걱정 반' [thebell desk]

최명용 산업2부장공개 2017-11-02 08:18:48

이 기사는 2017년 11월 01일 08:3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파격이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퇴는 삼성 안팎을 깜짝 놀라게 했다. 부회장에 오른 전문경영인이 자진 사퇴하는 것은 48년 삼성전자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권 부회장은 가장 화려한 순간에, 아무도 예상하지 않은 순간에, 심지어 오너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권 부회장은 '후배들을 위해 길을 내주겠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그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그 후 3주간 또 다시 고심을 거듭했다. 이재용 부회장도 뒤늦게 만나 양해를 구했다. 그 사이 후배 사장들도 만났다. 삼성의 쇄신을 위해 세대 교체를 하자고 의견을 나눴다. 윤부근, 신종균 사장이 뜻을 같이 했다. 이들 역시 가장 화려한 실적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그들은 "삼성의 도전과 성취의 역사를 함께 한데 대해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며 "후임자들이 삼성의 미래성장을 훌륭하게 이끌어 나갈 것을 확신한다"고 밝히고 자진 사퇴의 뜻을 공개했다. 윤 사장과 신 사장은 삼성전자가 3분기 실적 확정치를 발표한 10월 31일 퇴진 의사를 전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에 14조원이 넘는 이익을 거뒀고 연간 50조원의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최고의 순간에 삼성전자 CEO들은 스스로 물러났다. 콘트롤타워의 지시가 아닌 CEO 각자의 의지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삼성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는 향후 삼성의 의사 결정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삼성은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 자리를 두지 않았다. 권오현 부회장이 물러난 뒤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지만 전문경영인 부회장을 공석으로 뒀다. 오너 일가인 이재용 부회장만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대신 이사회와 경영을 분리하는 실험을 병행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또 다른 인물은 이상훈 사장이다. 2012년부터 CFO를 맡고 있던 이 사장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다만 이 사장은 사외이사들의 추천에 의해 이사회 의장으로 추대됐다.

이상훈 사장은 경영에선 물러난 채 이사회 의장 역할만 하게 된다. 주요 정책이나 투자 등에 대해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는 역할은 다른 경영진이 맡게 된다. 새롭게 삼성전자 부문장이 된 김기남 김현석 고동진 사장의 몫이다.

삼성의 이번 인사는 권력을 분산하는 최초의 시도다. 대표이사가 아닌,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인물이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은 몇해 전부터 이를 준비해왔다. 삼성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가 아닌 임원도 이사회 의장이 될 수 있다고 정관을 변경한 바 있다. 시간이 지나면 사외이사 중에, 외부인사 중에 이사회 의장이 나올 수 있다.

삼성은 그동안 위계질서에 의한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를 보여왔다. 컨트롤타워의 지시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게 삼성식 경영이었다.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이란 이름들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게 효율적이고 빠르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올해 삼성은 미전실 해체 이후 이번 이사회 의장 선임까지 권력을 분산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사회와 경영의 분리가 가져올 효과를 예단하긴 어렵다. 전문 경영인들이 단기 성과에만 치중해 미래 성장 동력을 잃게 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GE처럼 혁신 동력을 다시 찾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GE는 분산된 경영 구조 속에서도 꾸준히 혁신을 하며 조직을 새롭게 했다. 그동안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 속에서 억눌렸을 지 모를 삼성맨들의 저력이 나타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삼성과 같은 거대조직이 이같은 인사 실험을 한다는 게 새삼 놀랍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도 사뭇 궁금하다. 기왕이면 혁신적인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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