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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수은, 누구를 위한 공기업 전환인가 [thebell note]

윤지혜 기자공개 2018-01-31 09:25:27

이 기사는 2018년 01월 30일 08: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공기업 전환은 해묵은 논란이다. 때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정책금융 개편이 추진될 때마다 정부 주요 과제로 떠오른다.

지난해 국책은행의 공기업 지정 추진에 힘을 실어준 논거는 '방만 경영'이었다. 대우조선해양 등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 경영 문제가 불거지자 기획재정부가 은행에 대한 관리·감독의 고삐를 죄기로 한 것이다. 당초 얘기가 나온 건 2017년 1월이었으나 당시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자 안건 논의가 연기됐다.

1년이 지난 지금, 국책은행의 공기업 지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면서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다. 올해 금융권 최대 이슈인 '채용 비리'다. 수은의 고위 현직자가 전임자에게 인사 청탁한 정황이 포착돼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까지 진행되자 기재부는 "채용비리 근절방안으로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를 수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래 산은과 수은은 기타 공공기관으로서 경영공시 의무만 가졌지만 공기업으로 바뀌면 매년 정부로부터 경영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런데 기재부의 이런 주장에 여론은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우선 방만 경영을 막기 위해 매년 경영평가를 실시한다면 본래 국책은행으로서 해야 할 일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에 큰 차이가 생기고 낮은 점수를 받은 기관장은 경고를 받기 때문에 은행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이사회 구성이 바뀌면서 산은과 수은이 출자 또는 출연을 하려면 기재부 인사와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구조조정이나 벤처 투자 등에 대한 신속하고 유연한 결정을 하기 어려워진다. 이 경우 오히려 현 정권에서 강조하는 혁신성장금융과 상충된다는 지적도 있다.

채용비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난 29일 행정안전부가 지방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 점검한 결과 489개 기관에서 1488건의 비리가 드러났다. 채용비리 문제는 공공기관 깊숙이 뿌리내린 사회악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공공기관을 공기업화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재부 주장에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보니 국책은행의 공기업 지정 검토는 결국 기재부와 금융위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산은의 경우 지금 정무위원회 소관이지만 공기업으로 지정되면 기획재정위 소관 기관으로 넘어간다.

산은과 수은이 보여준 무사 안일한 행태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는 필요하지만 공기업 지정을 통해 정부 입김을 강화하는 것보다 실효성 있는 방안은 많다. 지배구조에 견제기구를 별도로 설치하거나 감사원과 국회의 감시를 확대하는 등 공공기관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제도 개선을 통해 개혁을 끌어낼 수 있다.

기재부는 정확한 논거와 로드맵 없는 개혁이 국책은행에 생채기만 남길 수 있다는걸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2008년 산은은 이명박 정부에서 민영화를 시도하며 기타공공기관에서 해지됐다가 2014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자 기타공공기관으로 다시 지정된 경험이 있다. 이 과정에서 정책금융공사와 분리했다가 재통합을 해야했다. 국책은행 역사에서 나타난 정부의 개혁 방향은 이렇게 실패를 거듭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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