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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익재단]무학의 꿈…한국문학의 세계화 이끌다[대산문화재단]재단운영 문화계 인사 주도 '전문성' 극대화

조세훈 기자공개 2018-08-21 17:06:29

[편집자주]

국내 금융사들이 이윤을 사회에 돌려주겠다며 공익법인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교육·장학사업부터 사회복지사업, 의료·보건사업 등 분야도 다양하고 기부금(출연금) 규모도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 공익법인이 설립 취지에 맞춰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부족한 상황이다.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을 대상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 실태를 발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더벨에서는 은행·보험·여전사 등이 설립시 출연하거나 최근 3년간 출연한 바 있는 공익법인 37곳(설립 1년 미만 제외)을 대상으로 운영 현황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18년 08월 20일 14: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초등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무학(無學)이다. 그러나 책을 보며 세상을 배웠고, 그 힘으로 굴지의 기업을 일궈냈다. 그래서인지 신 회장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교육'과 '책'이다.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만들어 궁핍한 한국이 교육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임직원들의 반대에도 종로 금싸라기 땅에 제일 큰 서점을 차렸다. 교육이 민족의 미래라는 신념 때문이다. 문학 애호가인 신 회장은 교보생명 빌딩에 광화문글판을 내걸고 시민에게 위안을 주는 시 문구를 선보였다. 교육뿐만 아니라 책과 문학의 대중화를 이끈 셈이다.

신 회장의 이 같은 뜻은 사회공헌재단 설립에까지 이른다. 재단명은 신용호 회장의 호를 빌려 대산문화재단이라 명명했다. 록펠러재단, 카네기재단 등 성공한 해외기업 공익재단을 본뜬 것으로 창립자의 의지를 이어가라는 뜻이다. 대산문화재단은 1992년 '민족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교보생명이 337억원을 출현해 설립됐다.

대산문화재단은 한국 최대의 종합문학상인 ‘대산문학상'을 비롯해 대산창작기금, 한국문학 번역 지원, 외국문학 번역 지원, 국외 한국문학 연구 지원, 대산대학문학상과 대산청소년문학상, 국제문학포럼 등의 사업을 지원해왔다. 눈에 띄는 대목은 설립 이후 문화계 자문위원제도를 운영해 체계적이고 전문화한 문화사업을 펼쳐왔다는 점이다. 대산문화재단이 손꼽히는 공익재단이자 롤모델로 평가받는 이유다.

교보 대산문화재단 규모

◇문화계 인사가 주도하는 재단 운영… '전문성' 돋보여

대산문화재단은 다른 공익재단과 달리 재단 이사장 직속 자문위원회를 두고 있다. 사업방향과 지원여부를 실무자가 아닌 문화계 전문 인사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 재단의 투명성과 공정성, 무엇보다도 전문성을 보장하도록 제도화했다는 게 재단 측의 설명이다. 자문위원은 2년 마다 바뀌며 각 분야 전문가를 선임해 사업 방향을 정기적으로 평가한다.

대산문화재단 조직도
▲대산문화재단 조직도 현황.(홈페이지 발췌)

자문위원은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 문광훈 충북대 독문학과 교수, 윤지관 덕성여대 영문학과 교수, 윤혜준 연세대 영문학과 교수, 이만희 극작가, 이승우 소설가, 김혜순 시인,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 등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재단 이사회에도 전문 인사를 참여시켰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문학평론가인 조남현 서울대 명예교수, 소설가인 임철우 한신대 명예교수가 문화계 인사로 이사회에 참여했다. SGI서울보증 대리점인 ㈜BJH의 변계원 전무이사, 백만기 김&장 법률사무소 변리사도 이사회 구성원이다.

이중 대표적 문학평론가인 조 명예교수는 재단 출범 직후부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전문화된 민간 문화재단의 초석을 닦는 데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단측은 조 명예교수가 재단 운영 방향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좋은 의견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봄날'을 쓴 임 명예교수 역시 19회 대산문학상 수상을 한 소설가로 한국 문학계를 대표하는 인사다.

재단의 전문성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창출해냈다. 특히 한국문학의 번역 사업은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재단은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4개 언어권뿐만 아니라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 전 세계 언어권으로 번역을 지원했다. 지금까지 번역·출판을 지원한 작품은 354여 건, 해외에 출판된 작품은 207여 건에 이른다.

고은, 황석영, 조정래 등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주요 작품뿐만 아니라 신진 작가들의 작품까지 각국 언어로 번역해 국외에서 출판될 수 있도록 했다. 그 덕에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 프랑스 4대 문학상인 ‘페미나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신창재 이사장이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한국 문학 세계화에 힘쓰고 한국과 프랑스 문화 교류에 기여했다는 평가에서다.

교보 대산문화재단 재무평가 현황

◇재단 효율성 우수…수익 자산 극대화 나서기도

대산문화재단의 총자산은 221억원이다. 그 중 금융자산은 148억원으로 67%, 맥쿼리인프라 주식은 54억원으로 24%를 차지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재단은 수익사업 자산 대부분을 정기예금 등에 투자해 4억원 이상의 이자소득을 얻었고, 주식 배당으로 3억원 가량을 거뒀다. 지난해에는 보유주식 평가를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전환하면서 자산 가치가 20억원 가량 증가했다.

수익 자산 극대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대산문화재단은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 자산을 지난해 29억원에 처분했다. 재단 관계자는 "자산을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기 위해 매각을 했다"며 "새로운 투자 상품을 알아보기 위해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수익사업 수익금과 기부금 대부분을 공익 목적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재단의 기부금과 보조금 등 고유목적사업 수익금은 2016년 27억1000만원, 2017년 31억3000만원이다. 수익사업과 기부금을 합하면 공익 목적사업에 근접하다.

공익재단 운영의 효율성은 우수했다. 순자산 공익목적사업 사용비율은 21.96%에 달한다. 전체 자산에서 공익목적사업에 사용하는 비율이 1/5이라는 얘기다. 공익목적 수입 증가율도 15.46%로 가이드스타가 제시한 5% 이상을 크게 웃돌았다.

또 운용소득의 적정금액 공익목적 사용금액[(운용수익×70%)-고유목적사업 필요경비]도 0보다 작아 수익 대비 더 많은 금액을 공익목적 사업비로 충실히 쓰고 있다. 출연금이 본연의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프로그램 비용 비율(목적사업비/고유목적사업 필요경비)은 84.89%로 양호했다. 공익사업 프로그램 비용 증가율도 17.3%로 가이드스타가 제시한 8% 이상보다 높았다.

눈에 띄는 점은 재단 자산 중에 5억6000만원 가량의 서화골동품이 있다는 점이다. 재단 관계자는 "교보문과와 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책사랑 운동에서 문학그림전에 참여한 화가가 그림 한 점을 매년 재단에 기증했다"며 "그 그림이 재산으로 잡힌 것이지만 판매 목적이 아닌 도서관이나 다른 서점에 전시회를 여는 데 사용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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