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9월 17일 08: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98년은 SK그룹에게 변곡점이었다. 8월 26일, 그룹의 근간을 세웠던 최종현 선대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엿새 후인 9월 1일, 장남 최태원 회장은 선대 회장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의 나이 38세 때 일이다.20년이 지난 지금, SK그룹은 괄목상대할 양적·질적 성장을 이뤘다. 취임 당시 34조원 수준이었던 그룹 자산은 작년 말 192조원으로 6배 가까이 늘었다. 매출 또한 158조원으로 4배나 증가했다. 지속적인 신사업 발굴을 통해 반도체와 에너지, 통신으로 이어지는 3대 성장축을 확고히 구축했다. 내수와 수출, 업황 민감 사업과 자연독점 사업 등이 골고루 포진돼 있는 덕분에 국내 그룹사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도 듣고 있다.
그간 이룬 성과를 한껏 뽐내고 싶을 법도 한데 최태원 회장은 스스로를 낮추고, 더 나아가 감추고 있다. 오히려 아버지에게 그 공을 돌리는 모습이다. 비슷한 시기 치른 최종현 선대회장 20주기 추모식과 최태원 회장 취임 20주년 행사 면면을 통해서도 이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최종현 선대회장 추모식은 올해 그룹 최대 행사였다. 초청 인사 섭외부터 선대회장 홀로그램 대담까지 모든 것이 오랜 기간 준비됐고 기획됐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행사에는 가족을 비롯해 전현직 SK 임직원, 정계·학계·언론계 등 각계 인사 500여명이 참석했다.
최태원 회장은 직접 추모식에서 선대 회장의 혜안과 도전정신이 SK 성장의 길잡이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본인은 아직 훌륭한 경영자임을 입증하지 못했지만 부친은 이를 증명한 거 같아 기쁘다는 말도 남겼다.
그 본심은 보름 뒤 열린 본인의 회장 취임 20주년 행사에서도 그대로 나왔다. 부족함이 많았던 경영자는 행사 참석 인원수를 줄이고 또 줄였다. 그렇게 전·현직 CEO들과 지인들만 초청을 받았다. 혹여 자신의 공을 자축하는 자리로 오해를 살까봐 외부는 물론 사내 공지도 하지 않았다. 내부에서 조차 취임 기념 행사가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이유다.
최태원 회장은 취임 20주년을 맞은 올해를 뉴SK의 원년으로 명명했다. 이뤄낸 것보다 새롭게 쌓아 올려야할 것이 많다며 조직원들을 독려했다.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겸손할 수 밖에 없다. 알려지는 모든 것이 허물 같아 부끄러웠을 것이다. 최태원 회장 본인이 과거 20년과 지금을 바라보는 눈이 그렇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결핍이야말로 혁신의 가장 큰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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