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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승의 시간 [thebell desk]

김용관 금융부장공개 2020-02-10 11:22:15

이 기사는 2020년 02월 07일 07: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개인적으로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을 잘 모른다. 지난해 점심 자리에서 만난게 전부다. 1시간30분 가량 이어진 점심 식사에서 손 회장은 우리금융의 현재와 미래를 조심스럽게 풀어나갔다.

카리스마 넘치는 달변가는 아니었지만 사안의 핵심을 정확하고 조리있게 전달한다는 느낌이었다. 풍채가 좋아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2017년 11월 행장으로 선임될 당시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손 회장의 추진력과 성과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손 회장이 고난의 시간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 회장과 행장직을 분리하고 차기 회장 후보로 선임되면서 무난히 연임을 예고했지만 해외금리 연계 파생금융펀드(DLF)가 발목을 잡았다. 금융감독원은 '문책 경고'라는 중징계로 DLF 사태에 대한 책임을 손 회장에게 물었다. 사실상 회장직에서 물러나라는 압박과 다름없다.

문책 경고는 경력의 단절이라는 점에서 금융인에게 치명적이다. 완전한 지주사 체제 완성을 앞두고 있는 우리금융 입장에서도 손 회장의 퇴진은 악재다. 우리금융은 보험사와 증권사 등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KB-신한-하나금융 등과 함께 경쟁체제를 만들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앞두고 있다. 1대 주주인 예금보험공사의 지분 매각을 통한 완전 민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금감원의 이번 중징계로 관치 금융이 부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7년 손태승 우리은행장 선임 인사는 극적이고 자율적이어서 금융사에 기록될 만하다. 우리은행은 이사회를 장악하고 CEO 인사권을 쥔 IMM PE, 한국투자증권, 한화생명 등 5대 과점주주가 있지만 예금보험공사(예보)가 단연 1대 주주다. 그럼에도 예보도, 정부당국도 은행장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

전임 이광구 행장 선임 때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논란이 빚어지고 이로 인해 이 행장이 임기 내내 시달렸던 것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손 행장이 우리은행 역사에서 자율인사의 사례를 처음 만들면서 은행 경영에 확고한 리더십을 확보했다는 점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금융은 지주사 체제 전환과 민영화의 디딤돌을 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DLF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주 회장에게 물을 수 있는지 논란이다. 우리은행은 제재심이 열리기 전부터 DLF 피해자들에게 전향적 배상 의지를 보였고 실제로 배상 절차까지 신속히 진행했다. 일각에선 CEO 중징계의 법적 근거가 명확치 않은 상황에서 감독당국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번에도 우리금융 이사진은 감독당국의 징계에도 불구하고 손 회장의 의중을 지지하고 있다.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도 임추위의 결정을 존중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제재 통보 시점은 3월초, 손 회장이 거취를 결정할 고민의 시간은 이제 한달도 안남았다.

손 회장의 선택지는 별로 없다. 행정 소송 혹은 연임 포기, 2가지다. 조만간 지연된 우리은행장 선임 절차를 재개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전자를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손 회장의 유일한 연임 방법은 행정소송 가처분 신청으로 징계 효력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DLF 불완전판매는 문제를 삼을만 하지만 회장에게까지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금감원도 감독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법적으로 충분히 다퉈볼만하다는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다만 정면돌파를 택할 경우 향후 불거질 금감원과의 갈등은 또다른 문제다. 소위 '괘씸죄'에 걸려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것을 관치라고 하면 너무 과할까. 실제 우리는 이런 경우를 수없이 보고 있다.

지주사 체제 완성과 지배구조 안정이라는 회장의 책무와 조직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금감원과의 갈등, 그 사이에서 손 회장은 무척이나 힘든 고민의 시간에 빠질 것이다. 손 회장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결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다만 2년 동안 그가 이뤄낸 성과를 볼 때 현재로선 그를 대신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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