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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경영권 승계는 반사회적인가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0-02-29 18:01:45

이 기사는 2020년 02월 29일 18:0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9년 8월 29일 자 이른바 국정농단에 관한 대법원 판결에는 삼성그룹의 이른바 ‘승계작업’에 관한 언급이 여러 곳에 나온다. 판결에 따르면 승계작업이란 피고인이 최소한의 개인자금을 사용하여 그룹 핵심 계열사들에 대해 사실상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의미한다.

판결문이 정면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법원이 경영권 승계작업 자체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것이라고 보는 느낌을 준다. “최소한의 개인 자금을 사용하여”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가족경영 대기업의 3세(4세)에 대한 경영권 승계는 반사회적인가?

우선, 주식을 사들이거나 상속세 다 내고 주식을 상속받는 경우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의결권 수를 늘리고 경영권을 공고히 해서 경영권 승계가 발생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경우는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다.

원론적인 경영권 승계 방법은 우수한 경영실적으로 주가가 높게 유지되고 그 때문에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을 포함한 주주들의 신뢰로 우호적 지분을 다수 확보하는 것이다. 이 경우 승계는 회사 내 인사조치로 충분하다. 경영권과 리더십은 개인 지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회사 안팎의 여러 계약과 경영자가 창출하는 사회적 역량에서 나오는 것이며 계약의 견고성은 회사 안팎의 신뢰가 좌우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지분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은 쉽지도 않을 뿐 아니라 불확실성을 다량 내포한다. 남의 마음과 각양각색인 주주들의 투자전략에 경영권의 향배가 결정되게 하는 것은 곤란하다. 따라서 결국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지분의 확보에 치중하게 된다. 판결문이 말하는 ‘사실상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이 포함된다. 이 ‘작업’이 반사회적인가?

경영권이 확실해야 하는 이유는 회사 경영의 구심점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책임감이 무거워야 회사가 성장하고 주주가치가 제고되며 회사가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 회사가 지속가능하려면 경영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아마 여기에는 반론이 없을 것이다.

경영권이 잘 보호되지 못하는 방식으로 법률과 제도가 운영되면 창업 인센티브도 떨어진다. 창업과 기업공개를 통한 대형 회사로의 발전도 주저된다. 남에게 넘어가게 하려고 기업하는 사람은 없다. 즉, 삼성, 현대차와 같은 대형 회사의 출현이 저해된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사업장들이 고용과 세원 창출의 주역이다. 우리의 생활 수준을 높여주는 대다수 소비재도 대기업 생산품이다. 크게 사업을 한다는 것, 월마트 창업자 샘 월튼의 지론처럼 좋은 물건을 많이 공급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기여다.

경영권은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도 확실할 수 있는 것인데 꼭 3세가 승계해야 하는가? 답은 인센티브의 차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처럼 가족경영기업으로 출발해서 글로벌 기업이 된 경우 가족 구성원들이 회사의 성공과 지속에 가장 큰 인센티브를 가진다. 선대와 후손까지 연결되는 책임감도 존재한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대에 회사가 쇠락하는 것이다.

가족은 전문경영인보다 당연히 훨씬 장기적 관점에서 일하기 때문에 혁신과 변화에 대한 절박함과 동력도 더 크다. 국내에는 능력있는 전문경영자 풀이 아직 크지 않고 회사간 이동도 용이하지 않다. 경영역량의 기초가 되는 회사 안팎의 사회적 자산도 3세에게 집중되어 있다. 전문경영인은 사회적 자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회사 안팎의 이해관계 집단이 행사하는 압력에 취약해 내외의 자원배분 기능 조절에 실패하기 쉽다. 대우조선해양과 구 기아자동차 사례가 있다.

기왕에 가족 내 승계가 이루어질 것이면 이른 것도 좋다. 회사 내에서 비효율적인 긴장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후계자가 회사 내 전문경영인들과 나이 차이가 크지 않으면 전문경영인들이 불안할 수 있다. 피아트(FCA)의 존 엘칸 회장은 30대에 승계했는데 지나치게 젊었기(어렸기) 때문에 경영진 모두 자신을 진심 도와주려 했다고 기억한다. 아무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40만 되었더라도 모든 것이 달랐을 것이라고 엘칸 스스로가 말한다.

이른바 ‘오너 경영의 폐해’는 최근 급격히 부상하는 주주행동주의와 기관투자자 스튜어드십 코드가 향후 일부라도 해결해 줄 것이다. 소액주주들도 경제성장 둔화와 인구 고령화 때문에 과거보다 훨씬 더 자신들의 권리에 민감해졌다. 소액주주, 기관투자자,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동시에 갑작스러운 존재감을 드러냈던 2019년 정기주총 시즌은 역사에 큰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사회 운영과 결정에서 오너, 경영자와 사외이사들간 사회적 관계가 큰 비중을 차지했던 과거와는 달리 규칙과 법률적 책임에 대한 의식이 이사회 운영에서 매우 중요해지고 있는 추세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기업들의 내부통제와 준법감시가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대기업의 경영권을 일종의 사회적 자산으로 보아 3세로의 승계를 일단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진행되는 승계를 반사회적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통상적인 사업상 목적과 의도에 의한 적법한 경영권 승계는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두고 그에 관련된 사람들의 구체적인 행동이 반사회적인지만 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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