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8월 27일 07시5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집에 콕 틀어박혀 있던 올봄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베란다에 작게 화단을 가꾸기 시작했는데 딸기랑 바질, 블루베리를 심었다. 모종을 파는 아저씨가 딸기는 초보자가 성공하기 어려운 작물이라며 겁을 주길래 좀 망설이긴 했지만 일단 욕심을 냈다.바질이 제일 쑥쑥 자랐다. 얼마 지나지않아 딸기묘목에도 조그만 초록 열매가 두개나 달렸다. 하지만 모종 아저씨의 경고를 그냥 흘려 들어선 안됐던 모양이다. 딸기 잎에 까만 진딧물이 무더기로 생기더니 시들시들 힘이 없었다.
벌레를 어서 처치해야겠다는 조급함에 약을 뿌렸는데 너무 과했나보다. 여린 잎사귀들이 전부 노랗게 변해 며칠을 고생하다 결국 죽고 말았다. 그런데 요즘 금융당국의 조사 아래 놓인 운용사들을 보면 딸기묘목과의 속상한 이별이 떠오른다.
최근 금감원은 운용사와 수탁기관 등을 상대로 사모펀드 전수점검 중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해충 박멸작업.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 수습을 위한 후속 조치다. 계약서를 뒤져 자산을 그대로 운용했는지, 현지로부터 정보는 제대로 제공 받는지, 부실이 발생했을 때 기준가에 반영했는지를 죄다 살핀다. 하다 못해 일부 운용사는 메신저까지 탈탈 털렸다.
운용사 내부에선 지나친 처사라는 원성이 들끓고 있다. 검수에 선별적 기준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불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금감원 감시가 피곤해진 은행들은 지난달 즈음부터 펀드 수탁을 하나같이 거부 중이다. 수수료는 얼마되지 않는데 금감원 행정지도를 일일이 맞추자니 업무에 과부하가 걸려 수지가 안맞기 때문이다.
자연히 운용사들로선 새로운 펀드 출시가 하늘의 별따기마냥 어려워졌다. 중소형뿐 아니라 업계 최고 규모의 대형 운용사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A 운용사의 경우 최근 물류센터 펀드를 성사시키긴 했지만 아는 은행 네트워크를 총동원한 끝에 겨우 가능했다. 이렇게 알음알음 하거나, 펀드 판매증권사가 은행 계열사가 아니면 심사 통과가 힘들뿐더러 그마저도 장담하긴 쉽지 않다.
“수탁을 아예 안해주는건 아니지만 기준을 맞추려면 바늘구멍 통과나 다름없죠. 사실 부동산같은 실물형 투자는 제안서 내용과 실제 운영대상이 딱히 다를 여지가 없는데도 멀쩡한 물건을 안 받아주니 속터집니다.” 어떤 운용사 실무진의 한탄이다. 상황이 나아지려면 두세달은 필요한데 그때까지 이대로 버티자니 타격이 너무 커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유도리없는 농약치기가 과연 능사일까. 지금껏 한 건의 부실도 없이 트랙 레코드를 쌓아온 또다른 신생 운용사의 발버둥을 연이어 전해 들었더니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다. 딸기는 해충을 솎아내는 한파를 겪어야 정상적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지만. 서툰 정원사가 추위를 이길 힘조차 남겨주지 않는데 어떻게 겨울을 생존하란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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