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한국씨티은행 철수]HSBC 경험 잊었나…금융당국, 조치명령권 '뒷북'은행법상 인가 대상 해석 불가, 법망 정비 필요성↑

이장준 기자공개 2021-10-29 07:02:12

이 기사는 2021년 10월 28일 15: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당국이 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부문 철수를 앞두고 뒤늦게 후속 조치에 나섰다. 은행법 검토 결과 이 같은 영업 축소는 폐업으로 볼 수 없어 금융위원회 인가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조치명령권'을 발동했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기관 및 임직원에 대한 처분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했다.

그런데 후속 조치의 근거가 된 건 지난달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이다. 만약 금소법이 조금만 더 늦게 시행됐다면 한국씨티은행이 고객 보호 없이 폐지 절차를 밟아도 당국은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란 의미다.

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철수 가능성을 시사한 건 앞서 4월인데 당국이 넋을 놓고 있다가 이제야 '뒷북'을 치고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년 전 HSBC가 철수한 이후 은행법을 보완할 기회를 놓쳤는데 비슷한 과오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27일 정례회의에서 한국씨티은행에 대한 조치명령을 의결했다. 그동안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부문 매각 및 단계적 폐지에 대비해 은행법 상 인가 대상에 해당하는지 법적 검토를 진행해왔다.

7월부터 10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법률자문단이 관련 사안을 검토했다. 이달 15일에는 금융위원 간담회, 22일에는 법령해석심의위원회를 개최해 논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한국씨티은행이 기업고객을 대상으로만 영업하는 건 은행법 상 '은행업의 폐업'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은행법 제55조에 따르면 은행은 합병·해산·폐업을 할 경우 금융위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다만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이번에 철수하는 소비자금융부문이 전체 자산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30.4%다. 영업 일부를 '양도'하는 경우 인가 대상에 해당하지만 일부 '폐업'을 하면 인가 대상으로 보기 곤란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과거 HSBC 사례도 해석에 참고했다. 외은지점인 HSBC는 2013년 국내 소매금융 업무 철수 계획을 발표하고 총 11개 지점 중 10개 지점을 폐쇄했다. 당시 HSBC는 은행법 제58조 제1항에 따라 '외은지점 폐쇄인가'는 받았다. 이번과 마찬가지로 은행법 제55조 제1항에 따른 폐업인가는 받지 않았다.

현행법상으로는 금융위가 은행법을 적용해 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철수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없다는 의미다. 자칫하면 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나 직원을 보호하지 않고 곧바로 철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국은 지난달 25일 시행으로 효력이 생긴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에서 해법을 찾았다. 이달 27일 의결한 조치명령안은 금소법 제49조 '금융위원회의 명령권'에 기반한다. 금융위는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 및 건전한 거래질서를 위해 금융상품판매업자에게 시정·중지 등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금소법과 산하 시행령에 따르면 투자성 상품, 보장성 상품, 대출성 상품에 관한 계약 체결 및 그 이행으로 금융소비자의 재산상 현저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를 어길 시 금융위는 해당 금융상품판매업자 기관과 임직원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금소법 제51조와 제52조에 이같은 사안을 명시해뒀다. 건전한 금융상품판매업을 영위하지 못할 우려가 있을 경우 해당 기관에 대해 6개월 이내의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 정지, 위법행위 시정명령, 기관경고, 기관주의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 임원에게는 △해임요구 △6개월 이내의 직무정지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 조치를, 직원에게는 △면직 △6개월 이내의 정직 △감봉 △견책 △주의 중 하나에 해당하는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법상 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부문을 철수할 때 인가가 불필요하다는 걸 알고 맞는 법령을 찾아봤다"며 "금소법을 기반으로 하면 소비자와 고객을 보호할 수 있고 이를 어길 시 제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처를 두고 당국이 진작에 은행법을 정비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미 HSBC가 소매금융 부문을 철수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외은지점이라는 이유로 폐쇄에 대한 인가를 받았지만 충분히 다른 외국계 은행들이 폐업을 할 가능성을 예상하고 이에 대비해 법망을 정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법은 '허점'을 지닌 채 유지됐는데 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철수를 발표하면서 다시금 수면 위로 문제점이 떠올랐다. 당국이 이번에는 운 좋게 개입할 수 있었지만 법망 정비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는 지적이다.

만약 한국씨티은행이 금소법 시행 이전 조속히 철수를 결정했거나 금소법 시행이 지연됐다면 당국은 손쓸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타이트한 대출 규제 등으로 국내 은행업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진 만큼 HSBC, 한국씨티은행 같은 사례가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은행법 전반적으로 살펴볼 필요성도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역시 "은행의 영업전략 변화 등이 국민 생활 및 신용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제도 정비를 추진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한국씨티은행은 모든 소비자금융 상품의 신규 영업은 조만간 중단하기로 했다. 고객이 가입한 기존 계약에 대해서는 계약 종료 시까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의 요청 시 다른 금융기관으로 이관 등 필요한 절차도 지원할 예정이다. 소비자 보호와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포함한 직원 보호 조치 방안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