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12월 23일 07시4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군 훈련병 시절 첫 행군에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탕수육이 먹고 싶다였다. 걸을 때마다 어깨를 짓누르는 군장과 무릎이 빠질 것만 같은 전투화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는지 달짝지근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막을 길이 없었다."좀만 더 가면 정상이다!" 그리고 숨이 턱턱 막힐 때쯤 앞에서 들려온 교관의 희망찬 목소리는 한 걸음을 더 내딛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래, 몇 분만 더 참으면 정상에 다다를 거야" 이러한 기대감이 힘이 돼 또 참고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거짓으로 탄로 나는 덴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니면 나와 그가 정의하는 '좀만 더'의 시간이 달랐거나. 한편으론 탕수육을 떠올리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교관에게 심한 욕을 하면서 또다시 걸었다. 탈출할 방법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고.
"좀만 더 가면 진짜 정상이다!" 다시 들려오는 교관 목소리. 이번엔 속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마치 저 기대감이라도 없으면 걸을 수 없다는 양, 저 말을 구원이라 생각하며 걸었다. 역시 그의 두 번째 말도 거짓이었다. 그야말로 언제 도착할지도, 도착지가 과연 있는지도 모르는 정상(頂上) 없는 행군.
10년도 넘게 지난 병아리 군인 시절 행군이 떠오른 건 2년 동안 코로나19와 줄다리기하는 저비용항공사(LCC)들 때문이다. 확산세가 누그러져 여객 재운송 준비에 돌입할라치면 바이러스가 재확산되는 상황에 LCC들은 질려버렸다. 팬데믹이 만든 의외의 호황에도 비껴간 곳은 자영업자들과 LCC들뿐.
오미크론 확산 전 한 LCC 관계자는 "또 확산세가 심각해질지도 모르죠"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면서도 재운송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꼬박 한 달 전 위드 코로나로 다들 들떴던 때 변이 바이러스 등장으로 하늘길이 다시 막힐 줄 누가 알았으랴. 거짓말 같은 풍경이 곧 3년째다.
"앞 사람 발만 봐!" 훗날 한 선임이 알려준 정상 없는 행군을 견디는 방법이다. 그가 집중하라는 건 앞 사람도 아닌 앞 사람 발. 곱씹어 보면 목표 지점과 현재 위치 차이를 인식하며 느끼는 괴로움은 지금의 고난을 견디는 데 쓸모없다는 지적이었다. 한 발을 내딛는 당장의 목표에만 집중하라는 조언이기도 했고.
마찬가지로 정상 없는 행군을 하는 지금의 LCC들에 앞 사람 발만 보고 걷는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 LCC 관계자들은 계획이 어떻게 되냐는 기자의 안타까움 가득한 질문에 입을 모아 "버텨야죠"라고 잘라 말했다. 하루 벌어 하루 살더라도 재운송이라는 목표보다 생존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절박함.
그래, LCC들이여 일단 살아 남자. 어깨가 무너지고 무릎이 돌아가도 기어코 살아 남아 우리나라 시장 규모에 LCC들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며 '엄살'이라도 좀 다시 부려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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