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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반도체 기술동맹', 어떤 협력이 가능할까 [첨단전략산업 리포트]차세대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개발, 파운드리 공정 미세화 등 전방위 공조 가능성

김혜란 기자공개 2022-05-26 13:00:28

[편집자주]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는 한국을 먹여 살리는 3대 국가대표 산업이다. 정부도 중요성을 인식해 '국가 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육성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비메모리를 키워야 하는 반도체, 중국의 추격을 받는 디스플레이, 개화하는 시장에서 주도권 선점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배터리 업계, 모두 현실은 녹록지 않다. 더 빠르게 치고 나가지 못하면 세계 무대에서 밀릴 수 있다. 대기업을 필두로 첨단전략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소재·부품·장비업체들이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 진단하고, 미래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다각도로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5월 24일 16: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미 정상회담 기간 최대 화두는 단연 '반도체 기술동맹'이었다. 양국 정상이 반도체 분야에서 '첨단기술·공급망 협력'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이 이번 정상회담의 큰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이는 한국과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어떤 분야에서, 어느 수준으로 협력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목록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발표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 선언적 의미에 가깝다. 양국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 지위를 가져간다는 공동의 목표를 함께 달성하겠단 의지를 확인한 만큼, 구체적인 공조 방안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았다.

그렇다면 왜 미국과의 반도체 동맹이 필요할까. 또 협력은 어떤 분야에서 구체화할 수 있을까.

◇바이든의 삼성전자 방문 의미, 반도체 협력 필요성 확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 첫 일정으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3나노(㎚·10억분의 1m) 공정 웨이퍼에 서명한 것은 상징적이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5~6월 중 세계 최초로 3나노 공정에 돌입할 예정인 가운데, 한·미가 첨단공정 분야에서 협력할 니즈가 있단 점을 서로 확인하는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세계 2위 수준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미국 소재·부품·장비 업체들과의 협력 없이는 경쟁력을 지키기가 어렵다. 파운드리 업체가 새로운 공정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신기술을 지원할 첨단장비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실제 양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대만 파운드리 TSMC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선다는 목표를 세운 만큼 미국 첨단 소재·장비 업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다지는 게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 퀄컴과 엔비디아 등 세계적인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는 많으나 생산 공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첨단 소재·장비를 공급해야 원활한 칩 생산이 가능하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지금 반도체 공정 기술은 거의 기술적 한계에 도달한 상태다. 앞으로 3나노를 넘어 2나노, 1나노대로 갈수록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에 대한 공동연구,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의 공동 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서로 인식했다는 데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전자 방문, 한미 정상회담의) 의미가 있다"며 "한쪽에서 개발하기에는 연구비도 많이 들고 인력이 부족하니 같이 가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자료:삼성전자 뉴스룸)

◇어떤 영역에서 한미 기술협력이 이뤄질까

한미 간 기술 협력이 필요한 건 파운드리 분야뿐만이 아니다. 한국이 최강자인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취약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서로 공조하는 그림을 그려갈 수 있다.

파운드리 영역에선 세계 최초의 미세화 공정을 누가 먼저 달성하느냐가 핵심이라면, 메모리 반도체 영역에선 속도와 용량의 진화를 이룬 새 반도체 규격에 먼저 도달해 글로벌 스탠더드(표준)을 선점하는 게 최대 관건이다. 4차산업 시대에는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자율주행(AI), 사물인터넷(IoT) 등을 구현할 고성능·저전력의 차세대 반도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메모리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으나, 하이엔드 메모리 분야에서 기술적 진화를 이루지 못하면 맹추격하는 중국 기업들에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미국도 마이크론 등이 있는 메모리 경쟁국이긴 하나, 한편으론 메모리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가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의 협력을 통해 고난도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려는 니즈도 강하다.

미국 인텔과 삼성전자 등을 거친 반도체 전문가 유웅환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인수위원은 "미국은 '뉴메모리' 기술 상용화에 대해 많은 리서치를 해왔다"며 "비휘발성 메모리인 M램 등 뉴메모리 개발은 한·미가 함께 할 수 있는 영역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또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시리얼(Serial,직렬), 스태킹(적층) 공정을 적용해 병렬구조의 D램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 혁신 분야에서도 협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첨단 장비회사인 램리서치는 칩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3차원(3D) D램 솔루션을 개발 중인데, 램리서치와 삼성전자의 공조도 하나의 협업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헤 1월 평택 2공장의 파운드리 생산설비 반입식에 참여한 뒤 EUV(극자외선) 전용라인을 점검하는 모습.
또 하나의 키워드는 '초저지연' 기술 공동 개발이다. 미래 확장현실(XR), 자율주행차 시대에선 반도체가 사람의 명령이나 기기의 제어 신호에 즉각 반응해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초저지연 기술이 핵심이 된다.

유 전 위원은 "미국은 초저지연 관련 킬러콘텐츠를 개발한 (실리콘밸리 등) 기업들이 많다"며 "이런 콘텐츠를 한국에 광범위하게 깔린 5세대이동통신(5G) 인프라에 적용해 실험하고 세계 스탠더드를 만들어가는데 협력한다면 상당히 많은 비즈니스와 애플리케이션을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쟁사들의 추격은 한국 반도체 기업이 새로운 기술적 우위를 선점하는 것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면 '반도체 기술 종주국' 미국과의 협업이 요구된다. 한미 정상은 정상회담에서 양국 국가안보실(NSC) 간 공급망 문제 등을 다룰 경제안보 대화를 출범하고, 한국 경제안보비서관이 내달 미국을 방문키로 했다. 이를 시작으로 구체적인 협력 관련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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