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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 자리 고사하세요" thebell desk

최명용 금융부장공개 2022-11-11 07:40:56

이 기사는 2022년 11월 10일 07: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은행장 자리 고사했으면 좋겠어요."

모 은행장이 내정됐다고 하니 부인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했단다. 금융인이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자리를 하지 말라고 뜯어 말렸다니 의아하다. 그 부인은 눈물까지 흘리며 매달렸다. 은행장들의 말로가 비참했던 역사를 봐 왔기 때문이다.

관치금융 시절엔 많은 일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한일은행 이병선 행장은 불과 78일만에 사임했다. 재벌의 부동산 투기 문제가 불거졌는데 그 책임을 은행장에 물었다. 명동에서, 맥주회사에서 부정이 발생해도 은행장이 책임졌다. 크고 작은 사고에 자리를 내놔야 했다.

미국의 LA지점에서 벌어진 부정대출 사건 탓에 외환은행장(홍용희)이 자리를 내놓았다. 장영자 사건 당시엔 조흥은행장(임재수)과 상업은행장(공덕종)이 구속까지 당했다. 항소심까지 간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몸과 마음엔 상처만 남았다. 명예를 회복할 길은 없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로 퇴진을 해야 했고 누군가를 챙겨줘야 한다는 명분 아래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문민정부를 표방하던 김영삼 정부는 대대적인 사정을 단행했고 대출비리나 금융실명제 위반을 물어 은행장들을 내쫓았다. 구속까지 겪은 뒤 몇년이 지나서야 무죄판결을 받는 일도 반복됐다. 억울하지만 하소연할 곳은 없다.

'관치'가 약해지고 나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내부 알력으로 뒤 끝이 좋지 않은 사건들이 생겼다. 은행장과 금융지주 회장간 소송전까지 비화되는 일도 있었다. 전산시스템 교체를 두고 다툼을 벌였고 대놓고 상호 비방전, 언론플레이까지 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벌써부터 흔들리는 은행장(혹은 금융지주 회장)들이 나타나고 있다. 김지완 BNK 회장은 임기 5개월을 앞두고 조기 사퇴를 했다.

김 회장 아들이 입사한 한양증권과 채권 거래가 문제가 됐다. 하필이면 김 회장 아들이 한양증권에서 근무한 뒤 BNK와 한양증권간 채권 거래가 늘었다. 하지만 김 회장 아들이 근무하는 부서는 채권주관과 상관없는 대체투자센터다. 약간은 억울한 면이 있지만 임기에 연연하는 대신 조기 사퇴로 자존심을 챙기는 선택을 했다.

김 회장 외에도 올해 혹은 내년에 임기가 도래하는 수 많은 은행장과 CEO들이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손병환 농협지주 회장은 이미 연임을 둘러싼 수 많은 '설'들이 오가고 있다. 손태승 회장은 금융위 제재로 임기를 이어가는 게 불투명해졌다.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기업은행이나 수협은행 후임자 선정 과정도 잡음이 많다.

은행은 주인이 없는 회사다. 특정 대주주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수 많은 안전장치를 해 놨다. 산업자본이 절대 지분을 인수하지 못하게 했고 지분들을 철저히 분산해 놨다. 은행장(혹은 금융지주 회장)을 선출하는 과정도 투명하게 관리되도록 각종 규제로 묶어 놨다. 그 덕에 지배구조는 투명해졌지만 '안정'을 담보하지 못했다.

흔들리는 은행장들 속에서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얼마나 강해졌을까. 한국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금융지주 등 금융회사들의 사이즈는 커졌지만 내실과 경쟁력이 압도적으로 강해졌다곤 말하기 어렵다.

오너 경영을 고수하는 삼성과 현대차 등 제조업체들은 대를 이어가며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었다. 오너의 뒷받침 속에 CEO가 장기 집권하는 메리츠금융의 성장세도 놀랍다.

은행이 라이선스 산업인 만큼 정부 규제가 필요하고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 하지만 규제를 받는다고 해서 은행 CEO들의 임기가 단명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금융산업 성장을 위해 장기 비전을 만들고 이를 이룰 시간이 필요하다. 은행장들에겐, 금융지주 회장들에겐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은행장들을 그만 흔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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