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1월 13일 08: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혈액 공급이 잠시 멈추면 생명을 잃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경색이 일어나면 초기 응급처치가 중요한 이유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자금 경색이 오면 알짜 기업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과거 외환위기(IMF) 당시 진로의 파국이 대표적이다.국가는 단군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진로는 참이슬이라는 신제품을 출시, 최다 판매량을 연일 경신하며 최고 호황을 맞았다. 불황 산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영업이익도 매년 1000억원 이상 기록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유동성 관리에 실패하면서 부도에 직면했다. 유통, 건설업으로 사업확장을 하면서 대여금, 지급보증으로 발생한 2조원 넘는 채무가 발목을 잡았다. 막대한 현금창출력에도 외국계 투자은행에 부실채권(NPL)으로 매각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물론 지금은 자금 조달의 중요성과 리스크 관리, 금융시스템 선진화로 이런 비극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채권 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유동성 위기’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 위축에 레고랜드 사태마저 터지면서 시장이 완전히 마비됐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이 표면으로 떠오르자 당장 건설사와 일부 중소형 증권사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졌다.
여러 곳의 파산설이 흐르면서 초우량 공사채인 한전, 인천공항채마저 미매각되는 초유의 사태가 나타났다. 일부 기업은 공제회 등에 15~20% 넘는 금리로 조달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당시 롯데건설, 태영건설은 20% 금리에도 조달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선제적으로 자금 조달 전략을 짠 곳은 버틸 체력이 있었지만 롯데그룹의 위기는 진정되지 않았다. 한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 롯데건설의 지급 보증으로 현금이 메마른 탓이다. 이러다 건설사, 저축은행 등이 줄도산한 2011년 위기가 다시금 나타난다는 위기음이 여러 곳에서 울렸다. 다행히 정부가 ‘50조원+α’ 시장안정책을 내고 채권 시장이 안정화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롯데는 영리하게 이 틈을 활용해 메리츠증권을 등에 업고 1조50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롯데 외 다른 기업들도 지난 한 주 9700억원 수준의 회사채 수요예측을 실시했고 시장은 12배 넘는 매수 자금으로 화답했다.
리스크 관리는 타이밍이다. 자칫 판단이 늦으면 돌이키기 어려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지금은 채권 시장에 훈풍이 불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여전히 예측불허의 상황이라 입을 모은다. 한번의 위기를 넘겼지만 언제든 조달절벽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경고다.
각 기업의 조달 전략이 향후 생존의 명운을 가를 것이다.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금을 관리하는 것이 모든 기업관계자들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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